끝났는데, 왜 아직도 아플까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_첫번째 이야기

by 국박사

[ 연재 안내 ]

이 글은 제가 집필한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진이연 저, 어반전략컨설팅)의 핵심 내용을 5회에 걸쳐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이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 놓고 싶지만 놓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썼습니다.

연재 일정

1회: 끝났는데, 왜 아직도 아플까

2회: 사랑은 택시였다

3회: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었다

4회: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

5회: 결국, 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



관계는 끝났는데, 감정은 그대로였다


나는 도시를 설계하고 사람들의 동선을 분석하는 일을 한다. 복잡한 문제도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대부분 답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있었다.

바로 감정이었다.

상대방이 "이제 많이 지친다"고 메시지를 보낸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그 시간도. 그리고 며칠 뒤 깨달았던 사실도.

관계는 끝났는데, 감정은 그대로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관계가 종료되면 감정도 자연스럽게 정리될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관계의 종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진짜 어려운 건 그 다음이었다.

사람들은 이별 후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일상은 그럭저럭 돌아갔다. 일하고, 밥 먹고, 잠자고, 사람들을 만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게 정리되는 건 아니라는 걸. 연락처를 지우고, 사진을 삭제하고, 선물을 치워도, 감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새벽에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 무의식중에 보내려다 멈춘 메시지들. 그 사람이 좋아했던 음악이 나올 때마다 찾아오는 묘한 감정들. 지나간 관계인 줄 알았는데,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헤맨 건 이별 그 자체가 아니라, 이별 이후에 남겨진 감정들이었다는 것을.



징조를 알면서도 외면했던 시간


나는 사람들의 패턴을 읽는 데 능했다. 도시 설계를 할 때도,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도, 항상 데이터를 분석하고 흐름을 예측했다. 사람들이 어디서 병목현상이 생길지, 언제쯤 문제가 발생할지를 미리 알아채는 것이 내 일이었다.

하지만 유독 내 관계에서만은 그 능력이 무용지물이 되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알아채면서도 모른 척했다.

징조는 언제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답장의 속도였다. 예전에는 메시지를 보내면 거의 즉시 답이 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30분, 1시간, 반나절로 늘어났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변명을 찾았다. '요즘 바쁘겠지', '회의가 많아서 그럴 거야'. 하지만 정작 나는 알고 있었다. 답장이 늦어지는 건 바쁨 때문이 아니라는 걸. 그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다음은 대화의 온도였다. 똑같은 말이라도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문장 끝에 붙던 이모티콘이 사라졌고, '하하하'가 'ㅋㅋ'로, 'ㅋㅋ'가 '네'로 바뀌었다.

ENTJ인 나는 패턴 변화에 민감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 패턴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이번 주는 좀 바빠서", "다음 주에 만날까?", "일정 좀 보고 연락할게". 그런 말들이 늘어났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알겠어, 천천히 연락해"라고 대답했다.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가장 확실한 신호는 따로 있었다. 상대방이 나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전에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했었다. 작은 변화도 금방 알아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질문들이 사라졌다. 내가 힘든 하루를 보냈다고 말해도 "그런가?"라는 반응뿐이었다.

나는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냈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 '일이 바빠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야'. 그런 식으로 모든 변화를 합리화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직업인 내가, 이 모든 변화들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답장 속도의 변화, 대화 온도의 하락, 만남 빈도의 감소, 관심도의 저하.

이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나는 내가 분석한 결과를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다른 해석을 찾아다녔다.

왜냐하면 관계가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담으로 넘기려 했던 진지한 순간들


그날의 메시지는 평소와 달랐다.

글자 자체는 별것 아니었다. 일상적인 안부였고,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달랐다. 톤이 무거웠다.

상대방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마치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위로를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당황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평소에는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제시하고, 상황이 복잡하면 정리해서 설명하는 것이 내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결해달라는 것도, 정리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들어달라는 것 같았다. 공감해달라는 것 같았다.

나는 고민 끝에 농담으로 답장을 보냈다.

"그래도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나도 오늘 좋은 일이 있었거든? 프로젝트가 드디어 승인이 나서 기분이 너무 좋아ㅋㅋ"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좋은 소식을 나누면서 상대방의 기분도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는 늘 하던 대로 내 하루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오늘 회의에서 어땠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그런 이야기들이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메시지가 왔다.

"자기 얘기만 하고, 자기 과시를 하려고 나를 만나는 건지... 이젠 지치네요."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나는 멈췄다.

돌이켜보니 내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늘 그랬다. 상대방이 힘든 이야기를 하면, 내 좋은 소식으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상대방이 슬픈 일을 얘기하면, 내 성공 스토리로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했다.

대화의 90%는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늘 뭘 했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앞으로 뭘 할 예정인지.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어도 금방 내 이야기로 넘어갔다.

"너 오늘 힘들었구나.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그런 일이 있었어? 나는 오늘 이런 일이..."
"그거 정말 속상했겠다. 그런데 나 오늘 좋은 소식이 있어서..."

모든 대화가 결국 나에게로 귀결되었다. 상대방의 감정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내 경험이나 성과로 화제를 전환시켰다.

그것이 ENTJ인 내 습관이었다. 내 성취를 공유하고, 내 계획을 설명하고, 내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며칠 후, 상대방이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당신은 제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뭘 말해도 듣는 척만 하다가 결국 자기 얘기를 하잖아요. 저는 공감받고 싶은 거지, 당신 자랑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나는 정말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깊이 집중한 적이 없었다. 듣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내가 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내 이야기로 연결시킬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했던 건 연결이 아니라 집중이었다.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내 성공담이 아니라 그냥 들어주는 것이었다.



시절인연: 모든 관계에는 때가 있다


이별 후 몇 달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하지만 아무리 분석해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관계는 복잡했다. 수많은 변수들이 얽혀 있었고, 감정이라는 요소는 예측 불가능했다. 내가 알고 있던 논리적 공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든 카페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표지에 쓰인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첫 페이지에 적힌 문장이었다.

"모든 인연은 시절과 조건이 맞을 때 만나지고, 그 시절이 지나면 흩어진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내 가슴 어딘가에 저릿하게 닿았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답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因緣(인연)은 단순히 운명적 만남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因(인)은 직접적 원인을, 緣(연)은 조건을 의미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려면 원인과 조건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함께하는 것도 모두 특정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건들이 변하면, 관계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나는 내 경험에 이 개념을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과 만났던 것도 시절인연이었다. 그 시기, 그 장소, 그 상황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 서로의 마음이 열려 있었던 때,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조건들이 맞아떨어진 것.

함께 웃고, 대화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시절의 조건들 덕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건들이 바뀌었다.

서로의 우선순위가 달라졌고,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졌고, 마음의 여유가 달라졌다. 그래서 관계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그리고 결국 끝났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관계에는 제철이 있다. 딸기는 겨울에, 수박은 여름에 맛있듯이. 어떤 관계는 한 달, 어떤 관계는 일 년, 어떤 관계는 평생. 하지만 그 시간의 길이가 관계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에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시절인연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 관계관도 바뀌었다. 더 이상 관계의 지속성에만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언젠가는 끝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니, 오히려 현재가 더 빛났다.


[ 다음 회 예고 ]

그렇다면 이 아픔은 언제 끝나는 걸까? 관계는 끝났는데 왜 감정의 요금은 계속 나올까? 2회에서는 '사랑은 택시였다'는 비유를 통해, 우리가 이별 후에도 오래 아파하는 진짜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2회 '사랑은 택시였다'에서 계속됩니다.

그 연인은 그 시절까지였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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