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_두번째 이야기
이 글은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진이연 저)의 5부작 연재 중 2회입니다.
연재 일정
1회: 끝났는데, 왜 아직도 아플까 ✓
2회: 사랑은 택시였다 ← 지금 읽고 계신 글
3회: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었다
4회: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
5회: 결국, 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
이별 후 3개월째였다. 관계는 끝났는데 감정의 청구서는 계속 날아왔다.
밤마다 그 사람 생각에 잠들지 못하는 시간. 새벽에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자꾸 옆자리를 보게 되는 습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에너지를 빼앗아갔다.
관계는 이미 내렸는데, 요금은 계속 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택시를 탔다. 집까지 가는 길이었는데 도로가 막혔다. 차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미터기만 째깍째깍 돌아갔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랑이 택시와 닮았다는 것을.
택시는 거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요금을 부과한다. 막히는 길에서는 1미터도 가지 않지만 요금은 계속 오른다. 사랑도 그랬다. 관계가 진전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도, 감정의 요금은 계속 청구되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이미 지불한 요금 때문에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경제학에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는 개념이 있다. 이미 투자한 비용 때문에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계속 손해를 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 개념을 머리로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평가를 할 때도 늘 강조했다. "이미 투입된 비용은 회수할 수 없으니, 앞으로의 효용만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 관계에서는 그 원칙을 적용하지 못했다.
2년을 함께했다. 그 사람을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썼다. 감정을 쏟았고, 에너지를 투자했다. 그 사람의 힘든 시기를 같이 버텼고, 그 사람의 가족 문제까지 함께 고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관계가 나아지지 않았다. 싸움은 반복되었고, 오해는 쌓여갔고, 마음은 점점 멀어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 관계는 더 이상 건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버텼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끝낼 수는 없잖아."
이미 2년을 투자했다. 이별하면 그 2년이 의미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버텼다. 더 참았다. 더 노력했다.
마치 20,000원을 내고 택시를 타고 왔는데, 목적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냥 끝까지 가자"고 하는 것과 같았다.
택시기사가 물었다. "손님, 여기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계기판의 요금은 계속 올라갔다. 30,000원, 40,000원, 50,000원. 목적지는 점점 멀어지는데 요금만 불어났다.
관계도 그랬다. 행복해지려고 시작한 관계인데,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나는 "조금만 더 하면 좋아질 거야"라고 되뇌었다.
친구가 물었다. "그 사람이랑 있을 때 행복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이미 너무 많이 투자했다. 그래서 놓을 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가 낸 요금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이 양보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이 참았는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든 계산의 중심에 '나'가 있었다.
상대방도 똑같이 요금을 내고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상대방도 똑같이 시간을 투자하고, 감정을 쏟고,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상대방은 이미 내리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상대방이 말했다.
"저는 이제 지쳤어요. 더 이상 이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요."
나는 반박했다.
"우리 2년이나 함께했잖아. 지금까지 잘 견뎌왔는데 지금 포기하면 그동안 우리가 쏟은 시간이 다 헛된 거잖아."
상대방은 조용히 말했다.
"그 2년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거예요. 2년 동안 이미 충분히 버텼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2년을 투자라고 생각했다. 회수해야 할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버티면 언젠가 보상받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그 2년은 부담이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택시에서 내가 20,000원을 냈다고 해서, 상대방도 무조건 끝까지 타고 가야 하는 건 아니었다. 상대방은 이미 내리고 싶어했다. 목적지가 아니라는 걸 알았고, 더 이상 요금을 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는 "나는 이미 20,000원을 냈으니까 너도 끝까지 가야 해"라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학의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매몰비용(Sunk Cost)은 이미 지불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다. 그리고 합리적 의사결정은 매몰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미래의 효용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투자한 2년, 3년, 5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간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의 선택이다.
이 관계가 앞으로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가. 이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가 혼자 있는 미래보다 나은가. 지금부터 투자할 시간과 감정이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대답이 '아니오'라면, 이미 투자한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내려야 한다.
나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깨달았다.
택시에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낸 요금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걸.
20,000원이 아깝다고 계속 타고 가면, 결국 50,000원, 100,000원을 내게 된다. 그리고 목적지는 여전히 오지 않는다.
결국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이 먼저 내렸고, 나는 한참을 혼자 더 탔다가 결국 내렸다.
내릴 때 요금은 이미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와 있었다. 감정적으로,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하지만 내리고 나서야 알았다.
택시에서 내려도, 이미 낸 요금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 2년은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관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았다. 내 한계와 약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내려야 하는지를 배웠다.
택시는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수단이지, 목적지 자체가 아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으로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계속 달리고 있다면, 요금이 아깝다고 끝까지 타는 것보다, 지금이라도 내려서 다른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
나는 그렇게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더 걸렸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방향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진짜 아파했던 건 이별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투자한 시간과 감정이 회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 수없이 나눴던 대화들, 함께 만들었던 추억들, 그 사람을 위해 포기했던 것들. 이 모든 것이 이별과 함께 의미를 잃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시간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택시 요금이 아깝다고 해서 목적지 아닌 곳까지 가는 게 답이 아니듯이, 이미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고 해서 맞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미 낸 요금이 아니라,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다.
매몰비용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별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더 이상 그 2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었다. 그저 그 시절까지의 인연이었을 뿐이다.
[ 다음 회 예고 ]
택시에서 내렸다. 하지만 짐은 아직 손에 들려 있었다. 놓는다는 게 뭘까? 잊는 걸까, 지우는 걸까? 3회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었다'에서는 이별 후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다음 3회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었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