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_세번째 이야기
이 글은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진이연 저)의 5부작 연재 중 3회입니다.
연재 일정
1회: 끝났는데, 왜 아직도 아플까 ✓
2회: 사랑은 택시였다 ✓
3회: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었다 ← 지금 읽고 계신 글
4회: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
5회: 결국, 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
이별 후 6개월째,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같이 말했다.
"이제 놓아야지."
하지만 정작 '놓는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연락처를 지웠다. SNS 팔로우를 끊었다. 함께 찍은 사진을 삭제했다. 선물로 받은 물건들을 박스에 담아 창고 깊숙이 넣었다.
물리적인 흔적은 대부분 지웠다. 하지만 감정은 그대로였다.
새벽에 문득 떠오르는 목소리. 길을 걷다가 마주친 익숙한 뒷모습에 심장이 멎는 순간. 그 사람이 좋아했던 노래가 나올 때마다 찾아오는 공허함.
모든 걸 지웠는데, 아무것도 지워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봐." "여행이라도 다녀와."
나는 그 조언들을 따랐다. 시간을 보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여행도 다녀왔다.
하지만 돌아오면 그 감정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놓는다'는 것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놓는다'를 '잊는다'와 같은 의미로 생각했다.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했던 시간을 없던 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완전히 소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지로 잊으려고 했다. 떠오르는 생각을 밀어냈고, 떠오르는 기억을 차단했다.
하지만 감정은 의지로 제어되지 않았다.
밀어낼수록 더 강하게 되돌아왔다.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하게 기억났다. 지우려 할수록 더 깊이 새겨졌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백곰 효과(White Bear Effect)'라고 부른다. "흰 곰을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오히려 흰 곰 생각만 더 나는 현상이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 사람 생각하지 마." 하지만 그럴수록 그 사람 생각만 더 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놓는다는 건 잊는 게 아니라는 것을.
도시를 설계할 때, 우리는 기존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대로 두고 용도만 바꾸기도 한다.
오래된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만들거나, 폐철도를 산책로로 바꾸는 것처럼. 구조물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과의 기억은 지울 수 없다. 2년 동안 함께한 시간을 뇌에서 삭제할 방법은 없다. 사랑했던 감정, 행복했던 순간, 아팠던 기억들은 모두 나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바꿀 수 있다.
예전에는 그 감정이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었고, 밤에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이었다. 무엇을 하든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내 삶의 한쪽 구석으로 옮겼다.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중심이 아니다. 가끔 떠오르지만, 내 하루를 지배하지 않는다. 기억하지만, 매달리지 않는다.
놓는다는 건 지우는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더 노력했으면 달라졌을 거야."
"그 사람은 나 없이 못 살 거야."
"우리는 운명이었어."
"이 아픔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야."
"다시는 이렇게 사랑할 수 없을 거야."
이 다섯 가지 착각이 나를 과거에 붙들어 두고 있었다.
첫 번째 착각은 통제의 착각이었다.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더 잘하면, 더 양보하면, 더 이해하면 관계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계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상대방의 마음이 떠났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째 착각은 의존의 착각이었다. 그 사람이 나 없이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떠나면 그 사람이 무너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다. 누구도 누군가 없이 못 사는 법은 없다.
세 번째 착각은 운명의 착각이었다. 우리가 만난 건 운명이고, 그래서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만남이 운명이라고 해서, 이별이 운명이 아닌 건 아니었다. 모든 인연에는 시절이 있다.
네 번째 착각은 영원의 착각이었다. 이 아픔이 평생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도 파동이다.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영원히 높은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다섯 번째 착각은 유일의 착각이었다. 이 사람을 놓으면 다시는 이렇게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랑의 형태는 하나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깊이로 사랑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착각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나는 비로소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다섯 가지 착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리하는지, 각 착각마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는 책 4장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정리한다는 건 버리는 게 아니었다.
제자리에 놓는 것이었다.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서류들을 정리할 때, 우리는 그것을 전부 버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파일에 넣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자주 보는 것은 가까이 두고, 가끔 볼 것은 서랍에 넣는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소중했던 기억은 마음 한편에 고이 간직한다. 배운 교훈은 내 삶의 지혜로 활용한다. 아팠던 감정은 인정하되,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담을 공간을 만든다.
나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매일 밤, 10분 동안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허용했다.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두었다. 하지만 그 10분이 지나면,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고 다른 일을 했다.
감정을 억압하지 않되, 통제권은 내가 가지는 것. 이것이 내가 찾은 첫 번째 방법이었다.
두 번째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다.
"아, 지금 나는 외롭구나."
"지금 이 감정은 후회가 아니라 미련이구나."
"이건 그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거구나."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면, 그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는 내 삶을 다시 채우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떠난 자리는 컸다. 하지만 그 자리를 비워둘 필요는 없었다. 새로운 취미, 새로운 목표, 새로운 관계로 그 공간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이별 후 1년이 지났다.
여전히 가끔 그 사람이 떠오른다. 특정한 장소를 지나칠 때, 특정한 날씨를 마주할 때, 문득문득.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아, 이런 감정이 드는구나" 하고 인정한 뒤, 내 할 일을 한다.
그 사람과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내 삶을 규정하지 않는다. 과거의 한 챕터일 뿐, 전체 스토리가 아니다.
놓는다는 건 잊는 게 아니었다.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었다.
놓는다는 건, 그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살아가는 것이었다.
택시에서 내렸다. 짐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을 곳을 알았다.
무거운 것은 땅에 내려놓고, 가벼운 것만 가방에 넣어 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다음 회 예고 ]
감정을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끝이 있기에 더 소중한 것들.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들. 4회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에서는 이별이 가르쳐준 진짜 교훈을 이야기합니다.
다음 4회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