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_네번째 이야기

by 국박사

[ 연재 안내 ]

이 글은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진이연 저)의 5부작 연재 중 4회입니다.

연재 일정

1회: 끝났는데, 왜 아직도 아플까 ✓

2회: 사랑은 택시였다 ✓

3회: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었다 ✓

4회: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 ← 지금 읽고 계신 글

5회: 결국, 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이별 후 1년 6개월이 지났다.

어느 봄날 오후, 나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벚꽃이 만개했다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만개했던 꽃들이 이제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웃고, 이야기를 나눴다.

문득 생각했다.

벚꽃이 일주일 만에 진다는 걸 모두 알면서, 왜 저렇게 아름다워할까?

아니, 정확히는 그 반대였다.

일주일 만에 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거였다.

만약 벚꽃이 일 년 내내 핀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안도감이 오히려 무관심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벚꽃은 짧다. 그래서 소중하다.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더 간절히 바라본다.

관계도 그랬다.



영원할 거라고 착각했던 시간들


처음 그 사람과 만났을 때, 나는 이 관계가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정확히는 '영원'이라는 개념 자체를 의식하지 않았다. 당연히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이 사람과 함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끼지 않았다.

만나고 싶을 때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일 만나면 되니까 오늘은 피곤하다고 만남을 미뤘다. 다음에 얘기하면 되니까 지금은 대충 대답했다.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중으로 미뤘다.

언제나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여행 가자."
"다음에 그 영화 보자."
"다음에 천천히 얘기하자."

하지만 그 '다음'은 오지 않았다.

관계가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순간을 '다음'으로 미뤘는지. 그리고 그 '다음'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는지.



이별이 가르쳐준 것


이별은 잔인한 선생이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교훈을 주었다.

모든 관계는 끝난다.

영원한 관계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족도, 친구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거리가, 변화가 관계를 바꾼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어차피 끝날 거라면 뭐하러 사랑하나.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뭐하러 애쓰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점이 바뀌었다.

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이 더 소중한 거였다.

프로젝트를 관리할 때 데드라인이 없으면 일이 늘어진다. 하지만 마감일이 정해지면 집중도가 올라간다. 한정된 시간이 효율을 만들어낸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영원하다고 착각할 때는 소홀했다. 하지만 끝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사랑한다면, 다르게 할 것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그 관계를 다시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결과를 알면서 같은 길을 갈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면, 나는 분명히 다르게 할 것이다.


첫째,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다.

만나고 싶으면 지금 만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한다. 함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한다.

"다음에"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둘째, 상대방의 이야기를 정말로 듣는다.

예전에는 듣는 척하면서 내 할 말만 생각했다. 상대방의 감정보다 내 논리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이 원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것을. 특히 힘들 때는 더욱.


셋째, 작은 순간을 소중히 한다.

거창한 이벤트나 특별한 날만 의미 있는 게 아니다. 평범한 저녁 식사, 별것 아닌 대화, 그냥 함께 있는 시간. 그것들이 쌓여서 관계를 만든다.

예전에는 큰 것만 보려 했다. 기념일, 여행, 선물. 하지만 정작 그리운 건 평범했던 일상이었다.


넷째, 감정을 표현한다.

ENTJ인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사랑해"라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 행동의 의미를 몰랐다.

이제는 안다. 말해야 한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다섯째,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젠가 끝날 거라는 사실이 두려워서, 깊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칠까 봐, 아플까 봐, 헤어질까 봐.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차피 아프다는 것을. 안 다치려고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아픈 게 낫다는 것을.



끝이 있다는 건, 시작도 있다는 뜻이다


어느 날,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이별 후에 다시 사랑할 수 있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할 수 있어. 아니, 해야 해."

후배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또 아플 텐데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프겠지. 하지만 아프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사랑은 본질적으로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이다. 통제권을 일부 포기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프다. 상처받을 수 있다. 배신당할 수 있다. 끝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진짜 친밀함도 경험할 수 없다.

이별을 겪고 나서, 나는 더 겁이 났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두려웠다. 또 아플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끝이 있다는 건, 새로운 시작도 가능하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 관계는 끝났다. 하지만 내 삶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창밖의 벚꽃은 여전히 흩날리고 있었다.

며칠 후면 모두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1년을 기다려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아래에서 웃고 있었다. 끝을 알면서도, 아니 끝을 알기 때문에, 더 소중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지금 느끼는 감정들. 모두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는 끝난다. 변한다. 사라진다.

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이별이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상실'이 아니라 '현재'였다.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지금을 제대로 살 수 있게 된다.

다음 주에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대신, 오늘 이 만남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각성.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안일함 대신, 지금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절실함.

영원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 다음 회 예고 ]

이별을 받아들이고,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남아있었다. 나 자신을 다시 일으키는 일. 최종회 '결국, 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에서는 상처 입은 나를 회복시키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최종회 '결국, 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에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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