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_마지막 이야기

by 국박사

[ 연재 안내 ]

이 글은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진이연 저)의 5부작 연재 중 마지막 회입니다.

연재 일정

1회: 끝났는데, 왜 아직도 아플까 ✓

2회: 사랑은 택시였다 ✓

3회: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었다 ✓

4회: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 ✓

5회: 결국, 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 ← 지금 읽고 계신 글



누가 나를 위로해줄까


이별 후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줬다. 친구들은 술자리를 만들어줬고, 가족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봤고, 동료들은 일로 바쁘게 만들어줬다.

그들의 위로는 따뜻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아무도 나를 완전히 위로해줄 수 없다는 것을.

친구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새벽 3시에 혼자 누워 있을 때의 공허함은 메워지지 않았다. 가족이 아무리 걱정해줘도,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타인의 위로는 진통제 같았다. 잠시 아픔을 덜어주지만, 근본적인 치유는 아니었다.

진짜 회복은 다른 곳에서 시작되어야 했다.

나 자신으로부터.



내가 나를 버린 시간들


돌이켜보니, 관계가 끝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나를 버리고 있었다.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느라 내 감정을 무시했다. 상대방의 일정에 맞추느라 내 계획을 미뤘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고 내 본모습을 숨겼다.

상대방을 잃기 전에, 이미 나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관계가 끝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이 아니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2년 동안 '우리'로 살았다. 모든 선택을 '우리'를 기준으로 했다. 이 영화를 우리가 좋아할까, 이 식당을 우리가 갈까, 이 결정이 우리에게 좋을까.

그러다 갑자기 혼자가 되니, '나'라는 개념이 희미해졌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뭘 하고 싶지?

기본적인 질문들에 답할 수 없었다.



나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


회복의 첫걸음은 나를 다시 알아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하려 했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 살겠어"라고 선언하고, 큰 변화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거창한 다짐은 쉽게 무너졌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정말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단순한 결정이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뭘 먹고 싶은지 모르겠더라. 항상 상대방 취향에 맞춰서 정했기 때문에, 내 취향을 잊고 있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건 매운 떡볶이였다. 상대방이 싫어해서 2년 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이었다.

첫 입을 먹는 순간, 눈물이 났다.

매워서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걸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그다음부터 조금씩 범위를 넓혔다.

주말에 혼자 영화관에 갔다. 상대방이 지루해할까 봐 보지 못했던 다큐멘터리를 봤다.

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샀다. 상대방이 "쓸데없다"고 했던 분야였다.

골프를 시작했다. 상대방이 "시간 낭비"라고 했던 취미였다.

하나씩 할 때마다 느꼈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혼자 있는 법을 배우다


가장 어려웠던 건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게 두려웠다. 생각이 많아지고,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약속을 잡고, 일정을 채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외로움에서 도망치는 한, 외로움은 계속 쫓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멈췄다.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주말 오전, 일부러 아무 약속도 잡지 않았다. 핸드폰도 치웠다. 그냥 혼자 앉아 있었다.

처음 30분은 지옥이었다. 불안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낭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참고 견뎠다.

1시간쯤 지나니, 조금 익숙해졌다. 2시간쯤 지나니,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3시간쯤 지나니, 평온해졌다.

혼자 있다는 게 외롭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혼자 있어도 괜찮았다. 아니, 혼자 있어야 할 때가 있었다. 내 생각을 듣기 위해서, 내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서.

관계 속에서는 늘 상대방의 목소리만 들었다. 상대방의 감정에 반응했고, 상대방의 기분을 살폈다.

하지만 혼자가 되니, 비로소 내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안아주는 법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돌봄(Self-care)'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더 직접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나를 안아주는 법'.

관계가 끝나고, 가장 그리웠던 건 상대방이 아니었다.

안아주는 사람이 그리웠다.

힘들 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 지쳤을 때 "고생했어"라고 토닥여주는 사람. 실패했을 때 "잘했어"라고 격려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옆에 없으니,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그 사람이 나여도 되는 거였다.

힘들 때,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면 잘하고 있어."

지쳤을 때,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충분히 잘했어."

실패했을 때,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돼."

처음에는 이상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 같았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효과가 있었다.

누군가의 위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구걸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자기 돌봄은 이기적인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필수였다.

비행기 안전 수칙을 떠올려 보자.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면,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먼저 자신이 써야 한다고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다.



다시 일어서다


이별 후 정확히 2년 3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봤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아, 나 이제 괜찮네.'

완전히 회복됐다는 뜻이 아니었다. 여전히 가끔 그 사람이 떠올랐고, 여전히 가끔 아팠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예전에는 그 아픔이 나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파도 서 있을 수 있었다.

아픔이 사라진 게 아니라, 아픔을 다루는 법을 배운 것이었다.

회복은 직선이 아니었다. 계단도 아니었다.

파동이었다.

어떤 날은 좋았다가, 어떤 날은 나빠졌다. 한 달 동안 괜찮다가, 갑자기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파동의 진폭이 줄어들고 있었다. 좋은 날이 조금씩 더 많아졌고, 나쁜 날이 조금씩 덜 나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것이었다.

나쁜 날에도, 내일은 나아질 거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

지금 나는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그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다. 다른 성격, 다른 가치관, 다른 방식.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사랑하고 있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서 사랑하고 있다. '우리'를 만들되, '나'를 잃지 않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은 혼자만의 시간으로 지킨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힘들 때는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관계도 언젠가 끝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이제 알기 때문이다.

관계가 끝나도,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별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졌고, 더 솔직해졌고, 더 온전한 내가 되었다.

그 사람과의 관계는 그 시절까지였다. 하지만 그 시절이 내게 남긴 것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모든 인연은 그 시절까지다. 하지만 그 시절에 배운 것은 영원하다.


[ 연재를 마치며 ]

5회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별 후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그 시간을 돌아봤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있고, 때로는 그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그것도 괜찮다는 것을.

이 연재에서는 내 경험의 핵심만 추렸습니다. 하지만 책에는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이 더 많습니다.

밤마다 적었던 감정 일기의 내용들, 상담사와 나눴던 대화들, 친구들과의 솔직한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을 실제로 정리해나갔던 구체적인 방법들이요.


5가지 착각을 깨는 질문 리스트, 7단계 감정 정리 워크시트, 매몰비용에서 벗어나는 의사결정 프레임워크. 이런 것들은 연재에서 제목만 언급했지만, 책에서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담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정말로 원했던 건, 누군가에게 "나도 그랬어"라는 위로를 주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돼"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주는 것이었거든요.


혹시 이 연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책도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별 직후에, 힘든 밤에, 다시 사랑하기 전에.

책 제목처럼, 모든 인연은 그 시절까지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서 배운 것들은, 다음 시절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당신의 다음 시절이 더 나은 시절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진이연(陳以然) 드림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 진이연 저 | 어반전략컨설팅 |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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