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일하는가
아침에 책상 앞에 앉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4개의 모니터를 켜는 것. 부팅음이 순차적으로 울리고, 내 회사 "URBANSTRATEGY CONSULTING POWERED BY AI"라는 로고가 네 곳에서 동시에 떠오른다. 이 순간, 나는 준비가 된다.
2019년, 회사를 나왔다. 정확히는 월급이 끊겼다. 사업자를 냈다. 집 한편에 책상을 들여놓고, "이제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니터 한 대로 시작했지만, 곧 부족함을 느꼈다. 입찰서를 쓰면서 동시에 자료를 찾아야 했고, AI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답변을 받아야 했고, 그 사이사이 카톡과 메일을 확인해야 했다. 창을 최소화했다가 다시 키우는 그 2초의 지연이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모니터가 늘었다. 2개, 3개, 그리고 4개.
우측 아래 모니터는 내 손이 가장 자주 닿는 곳이다. 타이핑이 이루어지는 메인 작업 공간. 입찰 제안서든, 책 원고든, 여기서 문장이 만들어진다. 우측 위 모니터는 시선이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곳이라 가장 중요한 자료를 띄워놓는다. 공고문, 평가 기준표, 데이터 시트. 왼쪽 위는 유튜브나 학교 수업 동영상을 틀어놓는 공간이다. 다운로드 폴더도 여기다. 왼쪽 아래는 카톡창과 메일함. 복사 붙여넣기할 자료들이 대기하는 곳.
각자의 자리가 있다. 역할이 있다.
한번은 노트북만 들고 카페에서 일해본 적이 있다. 10분 만에 답답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화면 하나로는 이제 불가능하다. 창을 전환하는 그 찰나에, 내 사고의 흐름이 끊긴다. 집중이 아니라 기다림이 된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모니터가 4개면 집중이 안 되지 않냐?" 정반대다. 나는 4개의 모니터를 쓰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다. 하나의 일에 몰입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시야 안에 배치해놓는 것.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전환이 끝난다. 손은 멈추지 않는다. 뇌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공간 안에서 일과 휴식이 공존한다. 한 챕터를 쓰고 나면, 왼쪽 위 화면으로 시선을 옮겨 유튜브를 5분 본다. 카톡을 확인한다. 메일을 훑는다. 그리고 다시 우측 아래 화면으로 돌아와 타이핑을 시작한다. 이 사이클이 자연스럽다. 억지로 자리를 떠나지 않아도, 책상 안에서 리듬이 만들어진다.
가장 몰입이 잘 되는 순간은 책을 쓸 때다. 우측 아래에서는 집필이 이루어지고, 우측 위에서는 레퍼런스 자료를 펼쳐놓고, 왼쪽 어딘가에서는 AI가 끊임없이 돌아간다. "이 문장 더 나은 표현 있어?" "이 통계 최신 자료 찾아줘." "이 논리에 반론 가능한 지점은?" 4개의 화면이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일 때, 나는 '일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놀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재미있다. 시간이 사라진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정말 4개가 필요한가?
아니면, 1개만 켜놓으면 불안한가?
2019년 그 절박함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월급이 끊긴 그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모니터를 늘렸고, 창을 늘렸고, 동시에 여러 일을 돌리게 만든 건 아닐까?
효율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한 가지만 하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것"은 아닐까?
아직 답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 4개의 화면이 없으면 나는 지금처럼 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은퇴를 선언한 2031년쯤 되어봐야 알 것 같다.
지금은 그냥, 모니터를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