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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Oct 23. 2023

38. 뮤지컬 배우가 되다

직장인으로 이뤄진 극단에도 가입했고 시민 배우로서 공연도 무사히 마쳤다. 한 달이 지나도 여운이 남았다. 함성과 박수 소리가 귀에 계속 맴돌았다. 아쉬움을 곱씹고 있는데 또다시 가슴 뛸만한 얘길 들었다. ‘극단 밀양’은 매년 정기 공연을 한다고 했다. 2016년엔 처음으로 뮤지컬 공연에 도전한다고 했다. 뮤지컬이라니? 내가 참여해도 되는 건가? 말만 들었는데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연출은 ‘슈퍼 디바’라는 프로그램 우승자인 장은주 배우가 맡는다고 했다. 장은주 연출님은 밀양 출신으로 대구에서 뮤지컬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첫 모임 전까지 어떤 공연을 하는지, 내가 맡을 배역은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다. 누가 출연하는지도 몰랐다. 궁금증과 설렘을 안고 연습 장소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연습 장소는 아이돌 연습생들이 춤 연습을 하는 공간처럼 생겼다. 벽면에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고 바닥은 매트가 깔려있었다. 벌써 많은 사람이 와 있었고 우리 극단 배우들도 있었다.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인사를 나눈 후 연출님이 대본을 나눠줬다. 대구에서 실제 뮤지컬 배우가 두 명 참여한다고 했다. 진짜 뮤지컬 배우들과 함께 공연한다는 것에 또 설렜다. 마음은 벌써 내가 뮤지컬 배우가 된 듯했다. 대본으로만 모의 연습을 했다. 그조차도 재미있었다. 연습인데도 열심히 했다. 연출님에게 잘 보이면 대사 하나라도 더 얻어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내 배역이 정해졌다. 놀랍게도 주인공 친구 역할을 맡았다. 대사도 몇 개 있었다.     

 

알고 보니 연습 장소가 비보이들의 댄스 연습 공간이었다. 그 비보이들도 공연에 참여한다고 했다. 그들이 연습하는 장면은 정말 멋졌다. 웅장한 음악과 비보이들의 춤의 조합을 눈앞에서 보니 황홀했다. 똑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연습해도 질리지 않았다. 노래도 너무 좋아 계속 흥얼거렸다. 출연자는 고등학생부터 40대 후반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 공간에 세대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면 모두가 몸을 들썩였다. 그게 너무 좋았다. 흥이 있는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부끄럼 없이 춤출 수 있다는 것. 어디 가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공연장은 밀양 아리랑 아트센터 대공연장이었다. 공연 전날 리허설을 했다. 무대를 보니 또 가슴이 뛰었다. 조명과 음악까지 테스트하니 공연한다는 것이 그제 서야 더 실감 났다. 마이크 테스트도 했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내 목소리가 신기했다. 솔직히 모든 것이 신기했다.      


공연 당일 오전 무대 뒤편 대기실에서 분장을 받았다. 전문 메이크업 선생님들이 머리와 화장을 해 주셨다. 진짜 배우가 된 것 같았다. 배우로 참여하는 것이 맞았지만 실감 나지 않았다. 처음 하는 화장이 어색했다. 눈 화장을 할 때는 겁먹어서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오전에 전체 리허설을 했다. 복장을 갖춰 입고 마이크도 착용한 채 연습하니 이게 꿈이 아니구나 싶었다. 빨리 관객들에게 나서고 싶었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무대 뒤에서 배우들과 조용히 파이팅을 외쳤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왔다. 긴장, 흥분, 떨림 여러 가지 감정을 안은 채 내가 등장할 시간을 기다렸다. 연습할 때는 길게만 느껴졌던 1시간 40분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다행히 실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많았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인사를 할 때 박수가 쏟아졌다. ‘오딧세이’ 공연을 할 때도 받아봤던 박수지만 여전히 소름 돋았다.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는 받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노래는 부르지 않았지만, 뮤지컬 배우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이번에도 공연 후유증은 한동안 맴돌았다. 귀에서 계속 노랫소리가 들리고 내 대사가 떠올랐다. 내년이 빨리 왔으면 했다. 빨리 무대에 다시 서고 싶어졌다. 나는 역시 무대 체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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