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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Oct 22. 2023

37. 시민배우와 '극단 밀양'

나는 해보고 싶은 것이 참 많다. 하고 싶은 것들엔 공통점이 있다. 무대와 관객이 있어야 한다. 강의, 댄스 공연, 노래, 연극이 그렇다. 누군가는 ‘관종’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SNS 피드를 보면 내 사진이 대부분이다. 카톡 프로필도 아이들보단 내가 위주다. 강의는 4년째 해오고 있었지만, 다른 것들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밀양에는 매년 5월 큰 축제가 열린다. 바로 ‘밀양 아리랑 대축제’다. 인구 10만의 도시지만, 4일간의 축제 기간에는 밀양시 인구에 맞먹는 관람객이 방문한다. 밀양 시는 2015년부터 ‘밀양강 오딧세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공연을 도입했다. 1시간 30분 총 3막으로 구성된 ‘밀양강 오딧세이’는 1,600명이라는 밀양 시민 배우들이 출연한다. 밀양시 홈페이지에 시민 배우 모집 공고를 띄우고 서류 심사를 통해 배우들을 모집했다.      


2016년에도 배우를 모집했다.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광고를 봤다. 시민 배우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신청서 작성은 간단했다. 직장을 작성하는 칸이 있었는데 별생각 없이 밀양경찰서를 적어넣었다. 며칠 뒤 시민 배우 합격 문자가 왔다. 문자를 받은 다음 주 밀양 시청 대강당에서 시민 배우들 사전 설명회가 열렸다. 시청 대강당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입구에서 참석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이름을 말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한 여자분이 ‘혹시 경찰 아니냐고?’ 아는 척을 했다. 그분은 ‘극단 밀양’이라는 극단 기획실장이었다. 내 신청서를 봤다고 했다. 직업란에 경찰이 적혀있어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보통 경찰은 딱딱하고 보수적인 이미지인데 시민 배우에 지원했으니 그랬을 거다.      


그분이 잠시 따로 보자고 했다. 연기에 관심이 많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다. ‘극단 밀양’은 직장인들로 이루어진 극단인데 혹시 관심 있으면 가입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극단이라는 말에 벌써 관심을 가진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러고 싶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극단 밀양’의 배우이자 밀양 시민 배우가 되었다.      


내가 출연하게 되는 장면은 ‘밀양강 오딧세이’ 중 하이라이트인 3막 독립군의 중국 ‘태항산’ 전투 신이었다. 밀양 출신의 윤세주 열사와 많은 독립군이 ‘태항산’에서 일본군에 전멸을 당했던 전투다. 화려한 전투, 일본군에게 전멸, 윤세주 열사의 죽음, 전사자들을 두고 오열하는 유가족들, 전사자 모두가 일어나 혼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 등 볼거리가 많은 공연이었다. 첫 연습에 참여한 날 ‘극단 밀양’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을 알았다. 덕분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주연을 보좌하는 역이었다. 한 달을 연습했다. 주말도 반납하고 연습에 참여했다. 재미있었다. 피곤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습하러 가는 길조차 즐거웠다.      


축제는 목요일 리허설로 시작하여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 열렸다. ‘오딧세이’ 공연도 목요일 저녁 리허설과 금, 토, 일 저녁 총 네 번 했다. 리허설인데도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무언갈 해본 적이 없었기에 실수할까 걱정되었다. 함께 하는 이들도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연습을 많이 한 덕인지 음악이 나오자 몸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웅성거리던 관객들도 음악과 함께 조용히 공연을 관람했다. 멋진 장면이 나올 때면 자연스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중간중간 들리는 박수 소리에 심장이 터질 뻔했다. 웅장한 노래와 함께 공연을 끝냈다. 엄청난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심장이 두 배로 뛰었다. 이 맛에 공연하는구나 싶었다.    

  

그 후로 3년을 더 공연에 참여했다. 한 번은 일본군 장교 역할을 맡기도 했다. 윤세주 열사 역을 맡은 적도 있다. 극단에 누가 될까 봐 정말 열심히 연습에 참여했다. 다행히 연기에 소질이 있었는지 모든 역을 잘 소화해 냈다. 시민 배우는 내 인생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아직도 한 번씩 그날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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