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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Oct 20. 2023

36. 학습모임 두번째 시도

경찰이 된 후 7년을 의미 없이 보냈다. 방황 끝에 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후배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지 않도록 하고 싶어 학습 모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실패했다. 단, 그 1년이 그들에게 가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첫 번째 학습 모임이 해체된 지 3년이 흘렀다. 그해 정부에서 경찰을 2만 명 증원한다고 해서 순경들이 많이 늘었다. 한 번에 9명의 신임이 들어 왔다. 그들을 보니 학습 모임에 대한 열망이 다시 꿈틀댔다. 오래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모여 있을 때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먼저 내 이야기를 했다. 학습 모임을 만들려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꿈을 향해 달려가려 하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난 모임과 마찬가지로 참여 여부는 자율의지에 맡겼다. 다음 날까지 카톡으로 답변을 달라고 했다. 9명 중 몇 명이 답했을까? 놀랍게도 5명이 함께 하겠다고 답을 보냈다. 그들과 함께 무언갈 할 생각을 하니 또다시 흥분되었다. 하지만, 고민됐다. 이번 모임은 좀 더 오래가고 싶었다. 첫 번째 모임의 실패 원인을 되새겨봤다. 재미는 있었지만 뚜렷한 목적이 없었다. 나는 갈증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해 봐야 답이 나올 것 같았다.  

    

지난 모임과 마찬가지로 첫 만남에서 모임의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각자 의견을 냈다. 이번에도 한 친구가 멋진 의견을 냈다. 경찰을 의미하는 ‘폴리스’와 모두에게 도움이 되자는 의미의 ‘플러스’를 합쳐 ‘폴러스’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만장일치로 ‘폴러스’가 선정됐다. 생각지도 못한 의견을 만났을 때 기분이 참 좋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두 번째는 무엇을 할지 논의했다. 이번에는 내가 제안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모임 때마다 리더를 바꾸기로 했다. 주인 의식을 가지게 하고 싶었고 리더십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리더는 자신이 하고 싶은 주제를 미리 공지하고 직접 그달 모임을 운영해야 한다. 부담 가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다들 재미있어하는 얼굴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일 텐데 잘 할 수 있을까?’하고 걱정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첫 번째 모임부터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운영도 어찌나 잘 하는지 괜한 걱정을 했다 싶었다. 첫 번째 친구가 잘 하니 다음 친구들 얼굴엔 걱정의 빛이 비쳤다. 하지만, 언제 걱정했나 싶을 정도로 두 번째, 세 번째도 멋지게 해냈다.   

   

야외 학습을 계획한 친구도 있었다. 모두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토론했다. 창의적인 생각들이 많이 나왔다. 재미있어 보였는지 직원들이 몇 명 더 들어왔다.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것 같아 뿌듯했다. 점점 더 커져서 모임을 쪼개고 원조 구성원들이 각 모임을 이끌어가는 흐뭇한 상상을 했다.  

    

상상은 상상으로 끝났다. ‘폴러스’의 생명도 1년 만에 끝을 맺었다. 1년의 징크스라도 있는 건가 싶다. 역시 인사 발령이 문제였다. 3명이 경찰서로 발령 났다. 일을 빨리 배우기 위해 늦게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모임에 부담을 느꼈다. 하나둘 자연스레 모임에 오지 않았다. 그러자 남은 이들도 의욕을 잃었다. 이상 유지할 수 없다 싶어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도 신임 순경들을 보면 학습 모임의 열망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이젠 실천하는 것이 꺼려진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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