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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Nov 13. 2023

43. 고객만족강사 2주 교육  

고객만족 강사에 지원하려 했지만, 사무실 분위기 또는 인력부족 때문에 매년 포기했다. 그러다 3년 만에 드디어 기회를 잡았고, 고객만족 강사 9기에 선발되었다. '한이 풀려 승천한 귀신의 마음이 이러할까' 싶을 정도로 기뻤다. 고객만족 강사 교육은 토, 일요일을 제외하고 아산 인재개발원에서 총 10일간 실시했다. 부산에서 아산까지 차를 이용하면 3시간 40분 걸리기 때문에 첫날부터 기운 빼기 싫어 기차를 이용했다. 천안아산역에 인재개발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기 때문에 기차가 편할 것 같아서였다. 6시 10분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섰다. 설레는 맘이 더 큰지라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차에서 자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도 느긋했다. 구포역에서 천안아산역까지 2시간 15분, 천안아산역에서 경찰 인재개발원까지 셔틀로 20분 총 2시간 35분에 걸쳐 인재개발원에 입성했다. 셔틀버스에 함께 교육받을 거라 예상되는 이들이 있었지만, 어색한 정적이 버스를 휘감았다.      

 

9시 30분에 도착했고, 생활관에 짐을 푼 후 10시까지 강의동으로 가야 했다. 다른 과정은 근무복으로 환복을 해야 하지만, 고객만족 과정은 사복을 입고 교육받기 때문에 짐만 풀고 바로 가면 됐다. 강의동으로 향하는 길에 근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쟤들 뭐지?' 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강의장은 조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고, 각자의 이름표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교육생 인원은 30명이었고, 6명씩 5개 조로 편성되었다. 나는 3조에 속했고, 우리 조는 남자 다섯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서먹서먹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어색함이 감돌았고, '빨리 이 어색함을 해결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모두가 강사님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강사님도 '네, 여러분 상황을 알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응답하듯 바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우리가 친해지는 데는 첫 번째 시간으로 족했다. 카드를 몇 장씩 나누어 주고 카드를 활용해 자신을 소개하라고 하여 팀별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그 후 간단한 게임 등을 통해 팀별 경쟁을 시켜 팀간 단합을 시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만큼 강사님의 강의 실력이 뛰어났고, 수강생들의 호응도 또한 후끈했다.  

    

수강생 대부분 3년 이상 강의를 해오던 사람들이라 적응이 빨랐고, 그중에서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꼭 한 둘 있어서 수업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리의 수업은 일과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수업명 '단합 대회' 친해지는 데는 역시 술이 만고의 진리다. 교육 10일 중 9일을 마셨고, 덕분에 우린 그 누구보다 끈끈해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고객만족 강사들은 1년에 한두 번은 모임을 가질 정도로 다른 강사과정에 비해 결속력이 강하다. 

      

강사진과 교육 내용 또한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다른 강사과정 교육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입을 벌리게 하는 강의 구성부터 수강생을 다루는 능청스러움,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멋진 답변으로 되돌려주는 지식. 무엇보다도 시간 날 때마다 회식에 참석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서 진심을 느꼈다. 그것이 우리를 더 뭉치게 했고 수업 분위기를 한 껏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 과정 중 5분 스피치 시간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5분으로 압축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건데 하루 전날 숙제로 던져줬다. 이날만큼은 다들 술을 자제하고 숙제에 매달렸고, 다음날까지도 모두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다들 강사이다 보니 무의식 중에 서로 간 경쟁의식이 있어 다른 이들보다 잘하고 싶었던 거다. 나도 하루 종일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5분을 넘겨서도 안되지만 너무 짧아서도 안된다는 거다. 5분에 가장 근접하는 사람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강사라면 시간 조절을 잘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훈련이기도 했다. 발표 당일 아침까지도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목욕을 좋아한다. 따뜻한 탕 안에 몸을 담그면 나를 감싸는 포근한 물의 느낌이 참 좋다. 인재개발원에 목욕탕이 있어서 매일 아침 목욕을 하고 강의동으로 향했다. 그날도 탕에 들어갔다. '망했다'라고 생각하며 탕에 몸을 담갔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며 발표할 내용이 줄줄 떠올랐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역시 계속 고민하면 답이 나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교육 마지막 날은 그동안 배운 것을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다. 각자가 생각한 고객만족에 대해 15분 분량으로 강의하고 강사님의 피드백을 받는 아주 무서운 시간이기도 하다. 또, 강사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맹수 앞에 던져진 먹잇감 같은 느낌이 든다. 강사들도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눈빛으로 발표자를 지켜보기에 더 긴장된다. 제비 뽑기로 발표 순서를 정했다. 가장 좋은 순서는 5~7번인데 운이 없어서인지 30명 중 20번째 발표자가 되어 버렸다. 강의장 분위기는 긴장 때문인지 숨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한 사람씩 발표를 시작했고, 끝날 때마다 강사님의 뼈가 있는 피드백이 이어졌다. 피드백이 많이 나올수록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 긴장했다. 발표를 끝낸 사람들은 변비가 해결된 사람 같은 표정으로 편하게 다음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들이 부러웠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내 차례가 왔다. 내 강의 주제는 ‘원 플러스 원’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그 이면을 보자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한 편의점에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이 콜라를 찾았을 때 콜라가 없다면 종업원은 어떻게 할까? 아마 대부분은 "콜라 없는데요"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땀을 흘리는 그를 보고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이 탄산음료가 아닐까?'라고 생각하여 "콜라는 없지만, 사이다는 있는데 괜찮을까요?"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이면까지 보는 것이고 그것이 실현될 때 고객이 만족할 수 있다'라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날 난 최고 큰 박수를 받았고, 최고의 피드백을 받았다. 아직도 강사님의 말이 기억난다. "이것도 좋았고, 이것도 좋았습니다. 지적할 것이 없네요. 단, 눈빛이 너무 강렬하니 그것만 조금 부드럽게 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다시 박수가 터졌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조금 자랑하는 것은 맞다.   

   

발표를 끝으로 2주간의 교육이 끝났다. 정말 즐겁고 배운 것이 많은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정이 들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헤어짐이 아쉬웠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는지 우리 중 8명은 6년째 계모임을 갖고 있다. 제주도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또 아쉬운 것은 고객만족 강사과정이 9기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지막 9기에 포함되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며,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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