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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Nov 20. 2023

44. 마음동행센터 상담 경험

내 강의 주제 중 ‘생명 지킴이’라는 것이 있다. 동료의 이상 징후를 조기에 알아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도록 '생명 지킴이'를 만드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물론 강의를 듣는 이들에게도 도움 되는 내용도 들어있다. 강의 말미에 자살 생각을 하는 동료에게 상담을 권유하는 내용이 들어가는데 '마음 동행 센터'가 그중 하나다. '마음 동행 센터'는 경찰청에서 심리상담센터와 제휴를 맺어 직원들에게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만든 곳이다.   

    

강의자료를 만들면서 '마음 동행 센터'가 궁금해졌다. 또,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동료들에게 추천하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한 번 가봐야겠다'라고 맘먹고 경찰청 담당자에게 상담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원래 예약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경찰청 담당자가 직접 예약을 잡아준 덕에 조금 빨리 갈 수 있었다. 경남경찰청 마음 동행센터는 창원에 있었다. 5시 상담 마감이라기에 토요일밖에 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첫 상담을 토요일 오전 10시에 잡았다.       


집이 부산이기 때문에 8시 30분에 출발했다. 한 시간 이내 거리지만 차가 밀릴까 싶어 조금 일찍 나선 것이다. 예상대로 상담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주차 타워에 주차하고 마음을 조금 가다듬었다. 상담은 처음이라 기대, 설렘, 두려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센터는 주차장 대각선 맞은편 건물 2층에 있었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상담실은 세 개의 방이 있는 듯했고 안쪽에는 기분 좋은 향과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 방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예약자 명단을 확인했다.       


그는 나에게 볼펜과 어떤 종이파일을 건넸다. 흡연, 음주 습관 등 상담에 필요한 문진표를 작성하는 거였다. 다음으로 노트북을 보여주며 심전도 측정할 때 쓰는 것 같은 집게를 손가락에 끼웠다. 스트레스 관리 정도를 측정하는 장비라고 했다. '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조용히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내가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걱정되었기 때문에 측정 결과가 궁금했다. 평소 가슴 답답함을 많이 느꼈던 터라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측정은 2분 정도 걸렸고, 화면에는 그래프와 수치가 나와 있었다. 다행히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벌써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이 상담실이라고 했다. 기록을 위한 컴퓨터와 이상한 기계 같은 것이 있었고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상담을 시작했다.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고 다른 어려움은 없었기 때문에 고치고 싶은 것을 말했다. 술을 매일 마시는 편인데 이러다간 알코올 중독이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까지 어떠했는지 내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어려웠던 점, 힘들었던 점을 다 뱉어냈다. 누구에게도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에게 다 말했다. 차라리 모르는 이라 더 편했던 것 같다. 속마음을 다 꺼내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는 동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그랬군요', '그래서 기분이 어땠나요?' 정도의 말만 했다. 궁금한 것은 조금 더 깊이 물어봤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한 시간 반 동안 내 이야기만 주야장천 했다. '살면서 이렇게 혼자만 말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니 상담의 매력을 알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을 참고 들어줄 상대가 많지 않다. 상담은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담받는 것을 회피한다. 상담실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경찰은 거부감이 더 크다. 강해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아파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상처가 커져서 감당할 수 없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공무원에 비해 2배 정도 자살률이 높은 것을 보면 더 납득된다. 나 또한 상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막상 상담을 받아보니 '세상 이렇게 좋은 것을 그동안 왜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동료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었다. 한 시간 반이 쏜쌀같이 지나갔고, '몇 마디 하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끝난 거야?'라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마치자마자 다음 주 토요일 예약을 또 잡았다. 궁금한 마음에 한 번 가보기나 할까 해본 것을 4개월이나 지속했다. 그래서 술 마시는 습관을 고쳤냐고? 아니 그것은 실패했다. 하지만, 상담의 내용엔 200% 만족한다.    


그 후 강의와 관계없이 만나는 직원마다 동행센터 상담을 적극 추천했다. 누가 보면 홍보 대사인 줄 착각할 정도로 찬양했다. 이 좋은 제도를 혼자 아는 것이 아까워서였다. 강의 때도 마찬가지다. 내 경험을 빗대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을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혹시 상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만 받아보라'라고 권유하고 싶다. 상담의 매력을 알게 되면 여러분도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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