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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Nov 21. 2023

45. 밀양경찰서 초대 직장협의회장

선진국 경찰엔 대부분 노조가 있는데 우리나라 경찰엔 노조가 없다. 노조와 비슷하지만 많은 권리가 빠져있는 ‘직장협의회’라는 것이 있는데 이마저도 경찰은 설립할 수 없었다.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에 경찰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20년 7월 법이 개정되었다. 경찰도 직장협의회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위직들의 복지를 위한 소통창구가 드디어 생긴 것이라 많은 직원이 기뻐했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직장협의회를 설립해야 다음 일을 기약할 수 있는데 나서는 이가 없으니 좋은 제도가 있어도 무용지물이 될 지경이었다.      


직장협의회 법이 통과되기 전에 ‘현장활력회의’라는 것이 있었다. 지휘부와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는 기구였다. 우리 서 대표가 없어 경남경찰청에서 회의가 있을 때면 한 번씩 내가 참석하곤 했다. 그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경찰청장, 총경 계급장을 달고 있는 각 부서 과장들과 한 자리에서 회의를 했는데, 우리의 요구 사항에 대해 그들이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며 큰 소리로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솔직히 놀랐다. 이게 가능한 일이 되었구나. 우리 이야기를 저들이 들어주는 날이 올 줄이야. 그때 깨달았다. 직장협의회는 정말 좋은 제도라는 것을. 이건 무조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문제는 좋은 제도가 있어도 운영할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기도 곤란했다.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회장을 맡기엔 젊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경찰서에선 속속들이 직장협의회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결정했다. 솔직히 귀찮았지만 좋은 제도를 이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우선, 현장활력회의 소속 직원들로 회의를 소집했다. 절차에 맞춰 직장협의회장을 뽑았다. 후보로 나설 사람을 추천키로 했고, 결국 내가 단독으로 추천되었다. 다음 거수로 협의회장 찬,반 투표를 했다. 만장일치로 밀양경찰서 초대 직장협의회장에 당선됐다.      


다음은 나를 도와줄 이들을 구성해야 했다. 사무국장은 회장이 선출할 수 있어 바로 지명했다. 부회장과 몇 명의 부장들은 추천 후 회원들의 승인을 받는 형식으로 선출했다. 경찰서, 파출소 직원들을 적절하게 나누어 구성하려 했다. 소외되는 이들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추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할 것을 부탁했다. 다행히 모두 큰 무리 없이 승낙했다. 다음은 사무국장과 함께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세무서에 가서 등록도 하고, 직장협의회 관인도 만들고 법인 통장도 만들었다. 하나씩 구성이 갖추어져 가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을 늘리는 일이었다. 친한 사람들부터 연락해 한 명씩 설득했다. 점점 회원 수가 늘어갔다. 40명에 불과했던 회원이 2달 만에 140명으로 늘었다.      


회원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회비다. 회비가 있어야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비를 내야 한다는 것은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금액이 문제다. 5,000원, 7,000원, 10,000원을 해야 한다고 의견이 나뉘었다. 직원들에게 투표를 부치기로 했다. 선택지가 많으면 직원들의 의견을 모으기 힘들 것 같아 7,000원과 10,000원 중 결정키로 했다. 3대 1의 비율로 10,000원으로 결정되었다.      


드디어 정식으로 직장협의회를 발족했고, 경찰서장과 첫 회의도 했다. 이왕 회장을 맡은 이상 잘 이끌어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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