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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Jan 03. 2024

55. 나는 이런 강의가 해보고 싶었다

강의 6년 차에 해보고 싶은 강의가 생겼다. 강의는 보통 한 사람이 앞에 나와 이야기를 하고 듣는 이들은 모두 앞을 바라보는 형식이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은 조를 짜서 강의도 하고 토론도 이루어지는 모둠형 강의였다. 물론 배운 적은 없다. 그동안 받아온 교육들에서 강사분들이 운영하는 것을 몰래 틈틈이 익혀왔을 뿐이다. 언젠가 써먹을 날이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받아 적기도 하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담았다. 학습 리더, 고객 만족, 액션 러닝 교육의 강사분들은 최고라 칭할 만큼 강의를 잘했고, 수강생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완벽했다. 그들은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여러 가지 악기를 든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그런 강의를 하고 싶었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을 그동안 많이도 경험했다. 이번에도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2018년도에 경찰청에서 인권 감수성 과정을 새로 개설했다. 인권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교육의 효과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동안의 일방적 강의형식에서 탈피해서 참여형 교육으로 3일짜리 과정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각 지방경찰청에서 강의를 진행할 사람들을 선발하여 진행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경남경찰청에서는 내가 선발되었고 서울에서 1박 2일간 모둠형 강의 진행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기존에 생각해왔던 것들이 있었기에 익히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신나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강사님의 말에 집중했다. 교육을 받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에 대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놀이를 기대하는 아이처럼 마음은 들떠있었고, 빨리 돌아가서 강의해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교육 일자가 잡혔고, 교육생 명단이 나왔다. 교육 인원은 24명으로 한 조에 6명씩 4개 조로 나누면 될 것 같았다. 조를 나눌 때 몇 가지 고려한 것이 있다. 우선, 같은 경찰서에서 온 직원들은 다른 조에 배치했다. 아는 사람끼리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잡담 때문에 교육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남녀 비율을 맞췄다. 동성끼리 교육을 받는 것보다는 이성이 포함되는 것이 교육 효과가 더욱 좋다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나이 분포를 맞췄다. 한 팀이 너무 고령화되거나 반대로 한 팀이 너무 연령대가 낮으면 게임 또는 토론을 진행할 때 균형이 맞지 않을 수도 있어서였다.      


조를 나눈 후엔 조장을 선발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조장과 팀명이 있어야 단합이 잘 되고 운영이 매끄럽기 때문이다. 주최 측과 협의하여 선물도 준비했다. 1등 팀 전원에게 줄 선물과 전체 MVP, 역할극 연기상 등 몇 가지 타이틀을 걸었다. 중간중간 단합 및 재미를 위한 게임을 몇 가지 준비했다. 유튜브를 보거나 레크레이션 책을 보면서 공부했다. 가족들에게 연습해가며 숙련도를 높였다. 모둠형 강의는 준비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교육 당일 한 시간 일찍 가서 담당자와 함께 책상을 모둠형으로 준비했다. 미리 나눈 조별로 이름표를 올려놓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교육장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준비된 자리를 보곤 당황했다. 보통 교육은 잠도 좀 자면서 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둠형 교육은 그것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가 가장 먼저 왔는지, 어느 팀이 가장 먼저 왔는지를 기록해 두었다가 시작부터 가점을 줬다. 일찍 온다는 것은 부지런한 것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기에 맘껏 칭찬해 줬다. 그들은 시작부터 해맑게 웃었다.    

  

교육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조장을 선발하고, 인권과 관련된 조 이름을 정해 발표하게 했다. 가장 호응을 많이 받은 팀에겐 역시 가점을 줬다. 그리고 개인별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자기소개도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해 좋은 호응을 받았다. 강의 주제가 인권 감수성이다 보니 모든 구성 하나하나에 인권에 대한 것을 담았다. 3일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고 가길 원해서였다. 중간중간 지루하지 않게 게임을 통해 점수를 나눠줬다. 한 팀이 독주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율도 필요했다. 인권 토론 및 발표, 인권 역할극, 인권 트리 만들기, 인권 경매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때론 웃고,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하더니 마지막 날에는 헤어지기 아쉬워서 강의가 끝났는데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3일간 많이 웃었고 끈끈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1기라서 그런지 더 정이 많이 갔다. 마지막 단체 게임에는 점수를 크게 걸어서 역전 가능한 기회를 만들었다. 모두가 마지막까지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 시도해보는 강의였지만, 원 없이 즐겼고 에너지를 발산했다. 웃고 즐기는 모습에 뿌듯했고 강의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동영상으로 만들어 모두에게 보냈다. 그해 두 번의 강의를 더 했다. 역시 처음이 가장 애착이 가고 열정이 넘쳤던 것 같다. 기회를 준 담당자에게 감사하고 지금도 그날의 추억이 오늘 일처럼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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