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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Dec 30. 2023

54. 밀양 야행 축제 진행?

코로나로 인해 1년 반 동안 강의, 연극, 축제 등 모든 외부 활동이 끊겼다.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삶의 반복은 지겨웠다. 나에겐 적절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나마 강의가 조금 들어오긴 했으나 비대면이라서 사람의 향기가 그리웠다.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자 단계별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준이 정해졌다. 2021년 8월 즈음 소규모 축제가 가능해졌다. 극단 실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밀양 야행’이라는 축제가 예정되어 있는데 프로그램을 두 개 맡아달라고 했다. 하나는 용인 민속촌처럼 사또 분장을 하고 관람객들과 어울려 노는 ‘사또께 아뢰오’라는 프로그램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 토론 프로그램 진행이었다. 기다리던 연락이라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그때까진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극단 동생 두 명과 함께 ‘사또께 아뢰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키로 했다. 곤장을 준비해놓고 지나가는 관람객들과 어울려 놀다가 곤장을 때리면 되는 거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용인 민속촌 유튜브를 보며 몇 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시나리오를 작성하며 머릿속으로 해당 장면을 상상했다.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렸고 그에 따른 리 액션까지 예상해서 정리했다. 예를 들면 포졸 두 명이 사또에게 반란을 일으켜 사또의 곤장을 때리자고 관람객을 선동하면 사또가 자신의 모자를 벗어 관람객에게 건네주며 “이 자가 사또요”하는 형식이다. 동생들과 시나리오를 보며 말을 맞춰봤다. 역시 합이 잘 맞았다. 한 시간만 하면 되는 거여서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 실장님이 우리에게 행사 내용을 잘못 전달했다는 것을 우린 행사 당일 날 알게 되었다. 행사장 세팅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단순히 부스 한족을 마련해 놓고 오가는 이들을 붙잡고 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행사장은 공연장 형식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즉, 관람객 앞에서 한 시간 동안 공연을 해야 하는 거였다.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늘이 노래진다는 표현이 이해됐다. 진짜 눈앞이 그랬다. 동생들과 긴급회의를 가졌다. 그들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극단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드립으로 한 시간 버텨보자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몇 가지 시연하고 나머진 각자의 드립에 맡기기로 했다. 첫 시작은 내가 맡았다. 강의 때 써먹던 몇 가지 놀이 기법을 활용했다. 분위기 띄우기 용이었는데 제법 잘 먹혔다. 호응이 괜찮아서 ‘어라 이거 잘 하면 괜찮겠는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용기가 생기자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관람객 몇 명을 불러내 곤장을 때리게 했다. 부부가 나와서 아주머니가 남편을 때리는 장면에선 모두 즐거워했다. 함께 즐기는 사이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자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실감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우린 성공적인 공연으로 극단의 이름을 드높였다. 실장님이 얄미웠지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맘이 풀렸다. 좋은 경험이었으니 나도 만족했다.

      

하지만, 내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녁 시간에 진행할 학생 토론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토론 주제는 ‘코로나 시국 등교를 해야 하는가?’였다. 문제는 토론도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토론자 6명의 명단만 받았다. 단톡방에서 인사를 나누고 보니 그들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톡 방에서 우선 찬성, 반대 측을 3명씩 나눴다. 그들에게 토론 당일 날 발표할 내용을 정리해 오라고 했다. 저녁 시간 토론장에 원탁 테이블과 의자들이 세팅되었다. 여러 명의 학생과 부모들이 패널로 참석했다. 원래 내 역할은 토론할 수 있게 분위기만 형성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토론 성격상 사회자가 필요할 듯했다. 할 수 없이 진행자 역할을 맡아 토론 시작을 알리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의 토론자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발표가 끝나면 내가 발표 내용을 정리해서 들려줬다. 한 명씩 발표가 끝날 때마다 다른 의견이 있는지 물었다. 패널로 참석한 이들도 반격 또는 동조의 의견을 밝혔다. 생각한 것보다 토론이 열기를 띄었고 학생들도 즐거워했다. 가끔 열기가 너무 뜨거워져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는데 중간에 개입해서 의견을 정리해줬다. 이번에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무리 발언에 모두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루 두 번이나 위기를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더 즐거웠고 뿌듯했다. 실장님도 감동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내년이 기대된다고 했다. 나도 내년엔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다음 해 ‘밀양 야행’ 때는 두 프로그램 모두 없어졌다. 다른 프로그램을 하긴 했지만, 이날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다른 것보다 토론 사회는 한 번 더 맡아보고 싶다. 생각보다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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