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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Dec 24. 2023

53. 색다른 학교 폭력 예방 강의

학교 폭력 전담 경찰이 도입된 것은 2012년도이다. 그 후 많은 경찰관이 학교에서 학교 폭력 강의를 해왔다.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이유가 뭘까? 홍보를 담당하며 여러 서장님을 따라 다녔다. 학교 폭력 강의를 할 때가 많았는데, 사진을 찍는 내가 민망했다. 말하는 서장님 따로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 따로 제대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았다. 학교 폭력을 없애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이들은 어울리지 못했을까? 처음 경찰관이 오면 아이들은 제복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 관심은 잠시 후 옆에 있는 친구 또는 스마트폰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학교 폭력이 나쁜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경찰관들은 똑같은 말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도 없이 선생님, 부모님, 경찰 같은 어른들에게 들어 왔던 말이다. ‘나도 안다고요’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이내 관심을 끈다. 선생님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어느 학교 폭력 전담 경찰관의 강의안을 봤더니 인사말, 학교 폭력의 정의,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동정 유발), 가해자에 관한 이야기(처벌), 학교 폭력 종류, 처벌 절차, 신고 방법 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도 목차만 보고도 마치 강의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만큼 아는 내용을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학교 폭력 예방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고민했다. 학생들은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또,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전해주어야 할까?’ 실제 학교 폭력 가해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피해자는 자신들의 친구가 아니다. ‘걔는 친구 아니에요. 장난 좀 친 것뿐이에요.’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이 전혀 없다. 또 사과할 마음도 없다. 그런 그들에게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면 느껴지는 게 있을까? 아마 모기가 무는 정도? 그럼 알기라도 하니 다행일 것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타인의 일에 무관심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 점을 긁어 보기로 했다.      


실제로 내가 학교 폭력 강의를 나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들어올지도 모를 강의를 생각하며 강의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나를 강사로 추천했다고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도 곧바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경찰관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강당엔 한 학년 전체가 모여 있는 듯 사람이 많았다. 유명 강사도 학생들 강의는 어렵다고 했다. 긴장되었지만,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준비해간 퀴즈를 냈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퀴즈 문제는 그 학교의 교화, 교훈, 이사장님 성함이었다. 너희들의 학교에 관한 공부를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선물을 준비했고 아이들은 그 선물에 열광했다. 선물은 바로 ‘마이구미’ 젤리다. 아마 그런 것을 주는 강사는 없었을 것이다. 신기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황정민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주먹이 운다’라는 영화가 있다. 극 중 황정민은 복싱 유망주였는데, 불의의 사고로 복싱을 그만둬야 했다. 이에 실망한 그는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분을 풀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그는 과거를 잊고 착실히 살아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주먹이 운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유명해진다. 한 친구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그를 초대한다. 처음엔 모두가 그를 환영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다 술에 취한 한 친구가 그에게 뼈를 때리는 한 마디를 날린다. “너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며 친구들이 하나둘씩 “네가 어떻게 이 자리에 나올 생각을 했느냐?”며 그를 비난한다. 결국, 황정민은 그 자리에서 도망 나와야 했다. 이 장면을 보여줬다. 그리곤 말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결국 현재의 나의 삶을 힘들게 한다.” 프로야구 선수, 유명 연예인 등 비슷한 사례를 말하며 나중에 너희들이 성공에 다다랐을 때 학교 폭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여기서 이 연타를 날렸다. 학교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회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몇 가지 말해줬다. 피해자가 군대 선임, 직장 상사 등 갑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였다. 아이들은 상상하는 듯했다.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지는 것을 우려해 그쯤에서 유머를 구사해 웃음을 유발했다. 심각함과 재미를 번갈아 가며 활용하니 아이들이 몰입되는 것을 느꼈다.   

   

학생들의 집중 시간을 고려해 강의는 30분 정도로 구성했다. 마무리 발언을 위해 퀴즈를 내었다. 경찰청에서 받은 8기가짜리 카드형 USB를 걸었다. 아이들의 눈에 불이 켜졌다. ‘저 선물은 내 거야’라는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문제는 75:5100:300의 의미를 맞추는 거였다. 정적이 흘렀다. “여러분과 관련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설마 했는데 정답을 말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놀라 탄성을 질렀다. 저 숫자는 당시 ‘전 세계 인구:대한민국 인구:그 학교 전교생 수’를 의미한다. “너희들은 우리나라 인구의 17만분의 1의 확률로 만난 인연이다.” 그만큼 소중한 이들이 눈앞에 있는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강의를 마쳤다. 그날 한 학생이 나가며 나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태까지 들은 학교 폭력 예방 강의와는 너무나 달랐고, 마음에 크게 와닿았고 너무 좋았어요." 강사는 이 한마디에 감동한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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