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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Dec 20. 2023

52. 전국 노래자랑 출사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경찰서 홍보업무를 맡았다. 처음엔 아는 것이 없어 멀뚱멀뚱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찰서 성과지표에 홍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부담감에 스트레스가 컸다. 그래도 이왕 맡은 거 잘해보자는 생각에 좋은 홍보거리가 없나 찾아다녔고, 그 덕에 첫 해 22개 경찰서 중 3위라는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1년 정도 지나니 홍보가 적성에 맞았다. 홍보 소재를 찾는 것도 재미있었고, 찾은 것을 잘 포장해서 완성품을 만드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일이 잘 맞다 보니 더 잘하고 싶어 졌고, 머릿속엔 자나 깨나 홍보 생각밖에 없었다. 그때 알았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다 보면 길을 가다가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것과 연결된다는 것을. 사랑을 하면 세상이 모든 게 아름다워지듯이 길거리, 아니 내 주변 모든 것이 홍보거리로 보였다. 재미있는 간판이나 문구가 보이면 '어떻게 하면 저걸 홍보에 활용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샤워하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 혹시나 잊을까 싶어 몸을 닦지도 않고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그런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랬는지 참 열정적이었다.       


2014년도에 전국 노래자랑이 밀양을 찾아왔다. 밀양 시청에서 '노래자랑 예선 신청자 모집' 공문이 와서 그 사실을 알았다. 문득 머릿속에 '번쩍'하고 불이 켜졌다. ‘노래자랑에 나가면 홍보 성과를 올릴 수 있겠다.', '카메라가 응원하는 사람들을 비출 때 그들이 홍보문구가 적혀있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있으면 되겠구나'라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떠올렸다. 가끔 노래자랑에 경찰 또는 의경들이 나오는 것을 봤기 때문에 본선까지 진출할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제작진도 제복 입은 경찰이 나오는 것을 환영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포돌이, 포순이'라는 비장의 무기도 있었기에 더 자신 있었다. 

    

예선 참가 신청서를 내기 위해 경찰서에서 가장 가까운 가곡동사무소로 향했다. 근무복을 입고 들어가니 신고받고 온 것으로 생각하였는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집중되었다. 홍보에 대한 의지로 부담을 이겨내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접수받는 직원이 웃으며 "응원할게요"라고 말했다. 참가 신청서에 예선에서 부를 노래 두 개를 적어야 했는데, 1번에 울랄라세션의 ‘달의 몰락’, 2번에 ‘황진이’를 기입했다. '달의 몰락'과 '황진이' 모두 당시 내 애창곡이었다. 


포돌이, 포순이 탈을 쓸 의경 두 명을 먼저 섭외했다. 매일 경찰서 4층 강당에서 ‘달의 몰락’ 노래와 춤을 함께 연습했다. 예선은 1주 뒤 밀양 시청 대강당에서 치러졌다. '경찰의 날'같은 큰 행사 때만 착용하는 정복을 입고 포돌이, 포순이와 함께 대강당으로 들어섰다. 강당은 1,000명 정도 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참가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날만큼은 그 시선들이 반가웠다. 관심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합격에 가까워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선은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고, 노래자랑 PD가 20초 정도 듣다가 즉석에서 합격, 불합격 통보를 날렸다. 노래를 부르자마자 탈락되는 사람도 있었다. 90%의 사람들이 트로트를 불렀다. '트로트가 대세인 건가?' 싶어 우리가 부를 노래를 ‘달의 몰락’에서 '황진이'로 바꾸기로 했다. 의경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고, 안무에 대해 급하게 논의했다. 결론은 '각자 막춤을 추자'였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PD가 시작 사인을 보냈다. “어얼씨구 저 절씨구 너를 안고 내가 내가 돌아간다 황진이 황진이 황진이”, “너를 두고 간다~”, "탈락입니다." 노래를 몇 소절 부르지도 못하고 탈락 통보를 받았다. '어라, 이게 아닌데' 납득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부끄러움이 몰려와 서둘러 강당을 벗어났다. ‘달의 몰락을 부를걸'이라는 후회와 아쉬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욕심이 모든 것을 망친 것만 같았다. 그동안 고생했던 의경들에게도 미안했다. 감사와 사과의 의미로 그들에게 햄버거를 사줬다. 경찰서로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재미있었다"며 낄낄거렸다.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좋은 추억을 쌓은 것'이라 생각키로 했다. 언젠가 노래자랑 예선은 다시 한번 참가해 보고 싶다. 그땐 조금 더 진솔한 맘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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