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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Aug 10. 2024

55. 나 아니면 안 돼

'이 일은 나 아니면 안 돼'라고 생각할 때가 두 어번 정도 있었다. 오랜 기간 그 업무를 맡아왔고 인정받아 왔기에 더 그랬다. 그래서 자만했고 노력을 게을리했다. 6년 정도 그 자리를 지키다 인사 발령이 났고 그 자리에 젊은 직원이 들어왔다. '어디 나 없이 한 번 잘해보시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잡음 없이 잘 돌아갔다. 물론 처음에 성과는 내가 있을 때보단 좋지 않았지만, 2년 정도 지나자 성과는 다시 좋아졌다. 두 번째 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없어도 결국 모든 것은 잘 돌아갔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나도 모르게 안으로 썩어가고 있었던 거다. 물론 계속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내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앞으론 인공지능, 로봇이 대체할 수도 있다. 알게 모르게 지금도 점점 많은 자리를 로봇이 대체하고 있다. 무인 카페, 로봇이 만드는 치킨, 무인 편의점, 무인 양장점 등 많은 자리에서 사람이 없어져 가고 있다.


'내 업무는 로봇이 대체할 수 없어, 이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자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몸담고 있는 경찰을 예로 들어보자. 가장 먼저 바뀔 수 있는 부분은 단속, 과태료 등 단순 업무일 것이다. 드론을 띄우면 교통단속이 가능하고 담배꽁초,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 등도 로봇이 단속할 수 있다. 실제로 두바이에서는 과태료 용지를 길가에 있는 로봇경찰에게 납부 가능하다. 그럼 교통조사, 형사 등 조사받는 업무는 로봇이 할 수 없을까? 오히려 더 정확하게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의 가짓수와 판례의 정보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테니까. 먼저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답변을 하면 그 답변에 해당하는 또 다른 질문을 금세 검색해서 바로 던질 수 있다. 조사를 받는 사람은 빠른 속도와 정확성에 거짓말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동공과 체온을 측정하는 센서가 있어 조사 대상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여부를 판독할 수 있다면 더 조사는 정확해질 것이다. 로봇관리자 한 사람만 있으면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이래도 내 업무를 로봇이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판사,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모든 전문 분야라면 오히려 더 로봇이 잘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다. 우린 이제 사람이 아닌 로봇과 싸워서 내 일을 지켜야 한다. 아니면 싸우지 않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로봇보다 나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로봇이 내 자리를 대체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나 없으면 안 돼'라는 생각은 오히려 '나를 제일 먼저 빼주세요'가 되는 세상이 왔다. 이젠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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