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자극적인 세상이 만들어낸 전염병 '불신'

by 오종민

요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자극적인 요소가 참 많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언제 다치거나 사라질지 몰라 보는 내내 불안하기도 하죠.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의 자극적인 요소들이 현실의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순수한 호의로 다가와도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정말 대가 없는 친절일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거야.' 하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사람을 참 잘 믿는 편이었습니다. 혹여나 믿다가 뒤통수를 맞더라도 일단은 끝까지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불신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스미싱 문자들 때문에 링크만 보면 의심부터 하게 되고,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점점 버겁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세상에는 점점 더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미디어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자극적인 요소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따뜻한 선행을 다룬 기사보다 끔찍한 사건 사고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주변은 온통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사람을 향한 불신은 어느새 사회 전체의 불안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불안이 팽배한 세상은 서서히 금이 가기 마련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향해 끔찍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자극은 내성을 만들고, 결국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우리를 빠뜨립니다.


세상이 이렇게 병들어가고 있는데도, 미디어는 여전히 자극적인 콘텐츠를 쏟아냅니다. 그들은 "우리가 자극적인 요소를 내보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나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일부 사람들의 문제다."라고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이윤을 창출하는 곳에는 반드시 사회적 책임이 따릅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친환경 경영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미디어도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극적인 요소를 줄이거나,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콘텐츠의 비중이라도 늘려야 합니다. 병든 세상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둘 문제가 아닙니다. 명백한 사회적 문제로 직시하고, 유해한 노출의 수위를 적극적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물론 미디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각성해야 합니다. 타인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스스로 누군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가 이토록 불안해진 데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도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한다면, 결국 그 무너진 사회의 피해는 고스란히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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