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주 절실한 신자가 마침내 신을 만났는데, 그 신이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대부분은 그 존재를 온전히 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신조차도 당연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 책 속에서 신이 항상 인간의 얼굴로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그 밑바탕에는 우리도 모르게 깊이 뿌리내린 '인간 중심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 심지어 돌이나 흙 같은 자연물조차 오직 인간에게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를 기준으로 재단하는 오만함도 바로 여기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본래부터 쓸모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어쩌면 아무 조건 없이 따뜻한 품을 내어준 지구에게 자꾸만 상처를 입히는 인간이야말로, 생태계에서 가장 뼈아픈 '아픈 손가락'일지도 모릅니다.
이름 없이 존재하는 무수한 생명에 우리 마음대로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것 역시 인간만의 행동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간의 잣대로만 생각하고, 우리에게 유해한지 무해한지에 따라 다른 생명을 함부로 해치거나 방치하는 태도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영화 <혹성탈출>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오만함이 궁극적으로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날카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인간 중심주의가 비단 자연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에게도 큰 해를 끼친다는 점입니다. 오로지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다 보니, 부유한 소수가 자원을 독점하는 불평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무분별하게 자원을 낭비한다면, 그 참혹한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 자녀들이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만물 위에 군림하는 우월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 가운데, 도구와 문자를 쓰고 언어를 조금 더 다채롭게 사용할 줄 아는 하나의 종일뿐입니다. 백 년이 채 되지 않는 생을 살다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리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습니다. 이제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의 미덕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이 별에서 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