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허물어질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벽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며칠 밤낮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아 가슴만 답답해집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화장실이나 샤워장, 혹은 운전석과 같이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공간과 시간에서 불현듯 그 벽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오곤 합니다.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더 한 것도 아닌데, 마치 하늘에서 툭 하고 선물을 떨어뜨려 준 것처럼 막혔던 고민의 실타래가 풀리는 것이죠.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짜릿한 순간입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벽은 대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나 소중한 도약의 시기에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될 때, 이른바 '슬럼프'라는 이름으로 견고하게 앞을 가로막습니다. 하지만 이 답답한 벽이 찾아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내 삶을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대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해답을 찾기 위해 고뇌한 시간만큼, 우리 삶의 농도는 더욱 짙어집니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무림의 고수들 역시 예외 없이 이 거대한 벽을 마주합니다. 그들은 더 높은 경지에 오르겠다는 열망 하나로 매일같이 피나는 수련을 거듭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한계에 부딪혀 좌절을 맛보기도 하죠.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고민하던 그들에게, 우연히 스쳐 가는 바람이나 떨어지는 낙엽 같은 아주 작은 계기를 통해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마침내 낡은 벽을 허물고 '절정고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가만히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애초에 부딪힐 벽조차 없습니다. 행동하고, 부딪히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에게만 벽이 허락되는 법입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당장 벽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잠시 길을 돌아가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잔뜩 들어간 어깨의 힘을 빼고 잠시 다른 일에 몰두하다 보면, 엉켜있던 생각들이 무의식 속에서 정리되어 뜻밖의 방향에서 해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화장실에서, 샤워기 물줄기 아래서, 혹은 멍하니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벼락처럼 스치는 영감들. 그것은 결코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내내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고자 했던 내 치열한 고민들이 빚어낸 찬란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니 눈앞에 거대한 벽이 버티고 서 있다고 해서 지레 실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영원히 뚫지 못할 벽은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허물기 위해 내 생각과 노력이 무르익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두드린 시간만큼, 그 견고한 벽을 무너뜨리고 마주하게 될 세상은 훨씬 더 달콤하고 경이로울 것입니다. 마침내 허물어진 그 벽 너머에는, 매일매일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더없이 행복하고 생동감 넘치는 진짜 삶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