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추억이라는 앨범에는 늘 누군가 살고 있다.

by 오종민

전 세계를 열광시킨 <오징어 게임> 신드롬의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요? 독창적인 스토리나 잔혹한 데스매치가 주는 스릴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작고 소박한 '옛날 게임'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PC가 장악한 요즘의 게임들은 굳이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혼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놀이는 달랐습니다. '오징어 게임', '비석 치기', '술래잡기', '다망구', '딱지치기' 같은 골목 놀이들은 밖으로 나가야만 했고, 무엇보다 나와 함께 뛰어놀 '친구'가 없으면 애초에 성립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가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시간 가는 줄도, 숨이 차오르는 줄도 모른 채 온 동네를 땀나게 뛰어다녔고, 그 속에서 함께 웃고 울며 부대꼈던 시간은 훗날 아주 진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추억에는 늘 '누군가'가 등장합니다. 멋진 여행이든 재미있는 게임이든 철저히 혼자서만 즐겼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앙상한 사실로만 남을 뿐, 가슴을 데우는 추억이 되지는 못합니다.


'스타크래프트', '포트리스', '카트라이더' 같은 1세대 PC 게임들조차 우리가 여전히 그리워하는 이유는, PC방에 나란히 앉아 친구들과 목소리를 높이며 함께 즐겼던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모니터 앞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매칭되어 했던 수많은 판들은 딱히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기성세대에게는 누군가와 땀 흘리며 함께했던 진득한 추억을 소환해 주었고,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살갗을 맞부딪히는 놀이 자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점점 고도화된 AI가 사람의 자리를 하나둘 대신하면서, 이 사회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부대낄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먼 미래에는 누군가와 함께 뒹굴었다는 '추억'이라는 단어 자체가 희미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차가워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서로의 따뜻한 체온을 더욱 간절히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기계적인 세상 속에서, 사람의 온기가 묻어나는 '인간적인 것'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