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주관적인 세상일까? 후자라고 생각한다. 각자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누군가에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보는 세상이 옳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사물의 색이 노란색이라면 처음부터 100% 노란색인 걸까? 아니다. 이 색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겐 노란색이 아니다. 색약, 색맹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눈동자는 95%가 흑백을 인식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색을 인식하는 부분은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색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5%를 우리와 다르게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 포유류, 인간의 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린 평상시 95%를 포유류의 뇌를 사용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단 5%만 사용할 뿐이다.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우린 지극히 감정적이고 5%의 뇌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여 감정의 행위를 포장하고 살아갈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보는 것이 정의고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단, 5%의 뇌가 그것을 행하는 것인데도 우린 내가 보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잘못 굳어지면 맹목이 되고 맹목은 폭력을 부른다. 그리고 또다시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이것이 우리가 뇌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나는 아니야'라고 믿고 싶겠지만 다이어트를 예로 들어보자.
매년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고 일주일 열심히 운동한 후 목이 말라 맥주를 마시거나 칼로리가 높은 음식에 손을 댄다. 이 행동이 포유류의 뇌가 시키는 것이고, 그 후 우린 '일주일 열심히 운동했으니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5%의 뇌가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다이어트뿐만 아니고 일상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우리는 내가 옳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닐지도 몰라, 내가 틀렸을 수도 있어' 또는 '저 사람은 다르게 보이겠지'라는 생각으로 5%의 뇌를 더 확장시켜야 한다. 이것 또한 훈련으로서 가능한 일이다. 옛 성인들은 고민과 사색으로 자신들이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는 믿음을 늘 경계했다. 세상을 바로 보고 싶다면 우리 또한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갖도록 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