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우리는 믿고 싶은대로 기억한다

by 오종민

두 사람이 치고받고 싸운 현장. 출동해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십중팔구 서로 "내가 피해자"라며 핏대를 세웁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요? 흥미로운 점은, 둘 중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기보다 스스로 믿고 싶은 대로 기억을 재구성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먹을 휘두른 기억은 무의식 저편으로 날려버리고, 상대에게 맞은 억울함만 남겨둔 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피해자가 되는 것이죠.


일상이나 일터에서도 이런 풍경은 흔합니다. 해야 할 업무를 누락해 놓고도 상사의 질책에 "분명히 다 처리했다"고 억울해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방어 기제가 발동해, 지시를 완벽히 따랐다고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해 버리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같은 사건을 두고도 자신의 현재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억을 유리하게 재구성하는 현상을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기억은 결코 완벽한 녹화 장치가 아닙니다. 매 순간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 속에서 우리는 입맛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왜곡된 정보가 교묘하게 끼어듭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편집된 기억을 '완벽한 사실'로 맹신하려 든다는 점입니다. 잘못된 정보들이 쌓여 굳건한 신념이 되고, 그것이 고정관념으로 뿌리내리는 순간 우리는 명백한 오답을 향해 질주하게 됩니다. 한 번 잘못 든 길에서 기수를 돌리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왜곡된 기억의 가장 무서운 점은, 내 믿음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가 눈앞에 나타나도 끝까지 사실이라고 우긴다는 것입니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기 때문입니다. 처음 입력된 정보가 이후의 판단을 지배하는 **'초두효과(Primacy Effect)'**도 이와 궤를 같이합니다. 첫인상이 좋았던 사람은 나중에 흠결이 발견되어도 "그럴 리 없다"며 두둔하게 됩니다. 나의 첫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어 끝내 진실을 외면하고 스스로의 기억과 인식을 조작해 버리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기억이 언제든 틀릴 수 있는 불완전한 파편임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내 머릿속 편견이 단단한 고정관념으로 굳어지는 것을 늘 경계하고, 타인의 기억과 의견이 내 것과 다를 수 있음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내 기억만을 절대적인 진실이라 믿고 고집을 부린다면, 내가 딛고 선 단단한 바닥이 실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얇은 유리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뼈저리게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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