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모호한 세상을 명쾌하게 살아가는 1cm의 언어

by 오종민

우리말에는 유독 추상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당장 '정말 많다'라는 제 말조차 어느 정도인지 단번에 가늠하기 힘든 추상적인 표현이죠. 문제는 이런 모호한 말들이 긍정적인 격려보다는 부정적인 잣대로 쓰일 때가 더 많다는 점입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야 한다", "일을 잘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고, 반대로 "너는 도대체 잘하는 게 뭐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잘'한다는 것의 명확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어떤 날은 80점만 받아도 칭찬을 듣지만, 또 어떤 날은 100점을 받지 못했다고 꾸중을 듣습니다. 객관적인 잣대 없이 화자의 기분에 따라 기준이 널뛰기 때문입니다.


조직 사회나 정치권에서 가장 남발되는 추상적 단어는 단연 '합리적으로'일 것입니다. 무언가 복잡한 문제가 터졌을 때 "합리적으로 잘 해결하세요"라는 지시만큼 난감한 것도 없습니다. 그 '합리적'인 수준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말의 이면에는 '내 책임은 없으니, 네가 알아서 책임져라'라는 교묘한 책임 회피가 숨어 있습니다. 훗날 문제가 생기면 "나는 분명 합리적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는데, 네가 그렇게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라며 빠져나갈 구실을 만드는 셈입니다.


이력서나 업무 보고서에서도 추상적인 표현은 독이 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고의 성과를 올리겠습니다', '상당한 수준으로', '진정성 있게' 등은 언뜻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누구나 고민 없이 가져다 쓸 수 있는 영혼 없는 단어들입니다. "올해 성과를 향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쓴 사람과, "작년 50%의 달성률을 올해는 60%로 끌어올리겠습니다"라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사람 중 누구의 보고서가 더 높은 신뢰를 얻을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이렇듯 추상적인 표현은 소통의 혼란을 야기하고, 때로는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낳습니다.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을까?"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게 만들거나, "저 상사는 매번 책임지려 하지 않아"라며 조직 내 갈등을 키우기도 하죠. 이러한 화법은 대부분 '내가 대충 말해도 상대가 개떡같이 찰떡같이 알아듣겠지'라는 안일한 착각에서 비롯됩니다. 스스로의 화법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부탁해", "저것 좀 가져다줘"라는 모호한 지시를 내리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다음 주 월, 화 중 시간 되는 날이 언제야?", "내일 오후 2시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까?", "식탁 위에 있는 파란색 물병 좀 갖다 줄래?" 이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은 서로 간의 오해를 원천 차단하고 소중한 시간마저 절약해 줍니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 전에, 내 입에서 나간 지시가 과연 구체적이었는지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추상적인 표현을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타인과 정확히 소통하고 협업해야 하는 순간만큼은, 불필요한 혼란을 막기 위해 어떤 언어를 선택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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