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엔 추상적인 표현이 정말 많다. '정말 많다'라는 표현도 추상적이다. 어느 정도가 많은 것일까? 추상적인 표현은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많이 쓰인다. 우린 '잘 해야한다'라는 말을 어릴때부터 들어왔고 지금도 계속 듣는다. '공부를 잘 해야한다, 일을 잘 해야한다, 운동을 잘 해야한다' 반대로 '너는 잘 하는게 없냐'라는 식으로도 활용한다. 그런데 '잘'이라는 단어에도 기준이 없다. 어느 정도 해야 '잘'하는 것이 되는 걸까? 어떤 날은 80점을 받아도 또 어떤 날은 90점을 받아도 '잘했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어떤 날은 100점을 받지 못했다고 '잘했다'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추상적인 표현은 화자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정치, 회사에서 가장 많이 쓰는 추상적인 표현은 아마 '합리적으로'라는 말이 아닐까. 이 말은 정말 어렵다. 특히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합리적으로 잘 해결해라'라고 하는데 그 합리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나는 책임 없으니 니가 책임져라'라는 것을 둘러서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나는 분명히 합리적으로 하라고 말했는데 니가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력서, 보고서 등에 쓰는 단어들도 추상적인 것들이 많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고의 성과를 올리도록, 가능한, 상당한 수준으로, 진정성 있게' 이런 말은 보기엔 좋겠지만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작년에 50%의 성과를 달성하였는데 올해는 60%를 달성하겠습니다."와 "올해 성과를 향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와 어떤 사람의 보고서에 점수를 줄것 같은가.
이렇듯 추상적인 표현은 사람들의 마음에 혼란을 일으킨다. 소통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한 쪽이 자신 또는 상대를 비하하는 일도 생긴다. '나는 왜 잘하는 것이 없을까?', '저 상사는 늘 책임지려 하지 않아' 이런 추상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내가 말하려는 것을 상대도 알것'이라는 착각에서 생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진 않은가? '빠른 시일 내에 부탁해' '저것 좀 가져다줘'
'다음 주 월, 화 중 시간되는 날이 언제야?', '내일 오후 2시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까?', '식탁 위에 있는 파란색 물병 좀 갖다줄래?' 명확한 표현은 서로간의 소통에 오해를 없애고 시간마저 절약할 수 있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화내지 말고 내가 말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추상적인 표현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단, 상대와 소통할 때 우리가 어떤 말을 사용해야 혼란을 피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