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불안의 시대, 철학에서 찾는 삶의 주도권

by 오종민

철학과 인문학이 그토록 어렵고 닿기 힘들어 보이는데도, 인류가 끊임없이 이를 탐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 속 위대한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조금은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간만이 유일하게 사유하는 존재인가?' 이는 고대부터 이어진 근원적인 질문입니다. 아무리 깊이 고민해도 현시대처럼 명확한 데이터나 정답이 떨어지는 문제는 아니었죠. 사실 데카르트의 통찰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것조차 완벽한 진실이 아닐 수 있기에 지금도 명쾌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이 복잡한 실존의 고민을 아주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절대적인 '신'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었죠. 신이 세상을 창조했고, 내 삶의 이유와 존재 가치 역시 신이 정해준다고 믿으면 더 이상 복잡하게 사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혹한 전쟁으로 무수한 생명이 스러지고, 신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이들을 목격하며 사람들은 점차 거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왜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는가?', '나는 고유한 존재인데, 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가?'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게 된 인간은 글과 음악, 그림을 통해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체가 남긴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선언 역시, 더 이상 절대자가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주체적 독립의 외침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치열하게 질문하고 토론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철학과 인문학의 본질은 결국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학문은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현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습니다.


오늘날 외롭고, 불안하며,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유독 많아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극심한 소득 격차, 시대를 바라보는 세대 간의 날카로운 갈등, 그리고 도덕성의 부재. 무엇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화된 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강박과, 그 틀을 깨고 벗어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이 격렬하게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몸은 쉬고 있다고 하지만 마음은 늘 쫓기듯 불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가장 평온함을 느꼈을까요? 아마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머니의 뱃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피곤한 하루 끝에 따뜻한 탕 속에 몸을 담글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오는 것 역시, 그 아늑했던 태초의 평온함을 본능적으로 감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숲을 거닐고 조용히 눈을 감아 명상에 잠기는 이유도 결국 지친 몸과 마음을 본래의 상태로 달래기 위함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육체의 쉼을 넘어선, '진짜 나'를 찾는 깊은 휴식입니다. 분명 내 몸으로 숨을 쉬고 내 머리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문득 '진짜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그 서늘한 불안감을 다독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철학과 인문학이 숨 쉬어야 할 이유입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정답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는 단계를 넘어서, 치열한 고민 끝에 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 비록 그 선택이 완벽한 정답이 아닐지라도, 내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그 깊은 사유와 고민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133. 유혹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가장 현실적인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