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등학교에서 12년을 보내고, 다시 대학에서 4년을 더 보냈다. 총 16년 동안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그리고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을 지금의 삶에서 활용하고 있을까. 그 시절 배웠던 영어, 일본어, 독일어는 과연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16년의 배움 중 지금까지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은 사칙연산뿐이다.
과학, 생물, 지리, 역사 등 수많은 과목을 배웠지만, 그것은 진정한 배움이라기보다 시험을 위한 암기에 가까웠다. ‘배우다’라는 말이 모르는 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면, 내게 그 과목들은 정답을 외우고 잊어버리는 반복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진 국어, 영어, 수학조차 삶에 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열을 나누기 위한 기준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품질관리, 안전관리, 경제성공학 같은 과목을 배웠지만, 그것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지식은 쌓였지만 쓰임은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 역시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배운 것을 삶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여전히 답을 듣지 못한다. 그 결과, 사회에 나온 아이들은 우리와 같은 혼란을 겪는다. 대학만 나오면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지난 12년의 교육을 무력하게 만든다.
학교가 정해진 틀 안에서 사람을 찍어내듯 길러 회사에 보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창의와 차별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능력을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획일적인 교육 속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창의성마저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향해 ‘나는 원래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며 자책하고, 노력조차 포기해 버린다.
AI와 경쟁하는 시대가 오면서 창의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삶은 지금보다 더 버거워질 것이다. 취업을 포기한 세대, 꿈을 내려놓은 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더 이상 국·영·수·사·과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열등감을 주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교육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