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신념은 언제 폭력이 되는가

by 오박사

지옥 시즌 2의 마지막 화에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 등장한다. 죽었다가 부활한 한 여성을 죽이려는 자(A)와, 그녀를 아이들에게 데려다주려는 자(B)가 격렬하게 맞선다. 그 순간 A는 이렇게 외친다. “너의 신념이 세상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세상을 구하는 일일까? 한 가족을 희생시켜 여론을 조작하고, 더 큰 혼란을 막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일까? 오히려 타인을 희생시켜 다수를 구하겠다는 신념 자체가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


이어 A는 말한다. “너는 세상을 구할 기회를 놓친 거야.” 그러자 B는 이렇게 응수한다. “세상을 구하기 전에, 너 자신부터 구해.” 이 대사는 묵직하게 가슴에 박힌다. 자기 자신조차 구하지 못한 사람이 세상을 구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 채, 타인의 불행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의를 외치는 신념은 과연 옳은 것일까. 이런 신념은 위험하다.


‘세상을 구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조건 아래에서는 몇 명의 죽음도 쉽게 정당화된다. 그릇된 신념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죄책감을 제거한다. 그 결과가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소름이 돋았다. A의 말에 잠시나마 흔들렸기 때문이다. ‘혹시 A의 말이 맞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야 하는가’라는 딜레마와 마주해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비교적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아직 그 ‘소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었다면, 혹은 내 가족이 그 대상이었다면, 나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B의 편에 섰을 것이다.


A의 논리가 그럴듯하게 느껴졌던 것도 같은 이유다. 나는 안전한 위치에 있었고, 그래서 타인의 희생을 관념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잘못된 신념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감각이다. 그 감각이 일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경계를 넘게 된다.


타인의 희생 위에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은 형태를 바꿔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고, 언젠가는 나 혹은 내 가족이 그 희생양이 될 차례가 올 것이다. 물론, 그 순간이 닥치면 A와 같은 선택을 할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선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분명 B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도 존재해왔다. 결국 선택은 우리 몫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조차, 사실은 하나의 선택이다. 그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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