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우리는 왜 사람을 정의하려 하는가?

by 오박사

사람들은 현상과 사람,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려 든다. “혹시 뭐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사람 뭐 하는 사람이야?”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분류하려는 욕구가 숨어 있다.


만약 그 사람이 의사라면 어떨까. 사람들의 눈빛에는 곧바로 부러움이 묻어난다. 동시에 그는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으로 읽힌다. 말투, 태도, 선택 하나하나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직업인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나는 경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개인이 아닌 ‘경찰’로 바라본다. “경찰이 그래도 돼요?” “경찰이 그런 것도 해요?” 마치 ‘경찰은 이래야 한다’는 매뉴얼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왜 개인보다 직업을 먼저 볼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보다, 분류된 틀 안에 넣어 바라보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불편함을 느낀다. 예외는 늘 귀찮고, 질문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내가 스스로를 그 틀 안에 가두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는 공무원이니까 연금 받을 때까지 조용히 지내면 돼.” “나는 00이니까 시키는 것만 하면 돼.” “나는 00이니까 보수적이어야 해.” 이렇게 자신을 정의하기 시작하면, 그 틀은 점점 두꺼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 틀 밖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세상이 복잡하고 수많은 현상과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분류하고 정의를 내리는 일 자체는 필요하다. 문제는 그 정의가 굳어질 때다. ‘00은 이래야 한다’고 믿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정의한 대상이 확장되거나 변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그렇게 말하며 다시 그것을 익숙한 틀 안에 욱여넣기 위해 이유를 찾고, 설명을 만들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한다.


특히 변화의 속도가 빠른 지금 같은 시대에는, 잘못된 정의 하나가 과거에 매달린 채 모든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뭐 하는 사람인지’를 묻기보다, ‘어떤 사람인지’를 볼 줄 아는 눈. 기존의 정의를 의심하고, 필요하다면 뒤집을 줄 아는 용기. 나는 그 안목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감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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