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보다 널 잘 아는데.” 이 말은 다정하게 들리지만, 실은 아주 위험한 오류를 품고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타인이 나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상대를 이해한 게 아니라,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한 착각에 불과하다.
이 착각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가 내가 그려둔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그를 다시 틀 안으로 밀어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넌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 “너 예전이랑 달라진 것 같아.”
이 말들은 이해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통제의 언어다. 상대를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변화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런 일은 낯선 관계보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더 자주 벌어진다. 연인 사이에서,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부모는 자녀를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통제하고, 연인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보호와 사랑이 상대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우리의 뇌가 늘 좋은 가능성보다 나쁜 가능성을 먼저 상상한다는 데 있다. 상대의 행동 하나를 보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단정해 버린다. 그리고 그 상상을 사실처럼 믿기 시작한다. 그래서 관계는 종종 사실이 아니라 상상과 오해 위에서 흔들린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상상하지 말고, 물어보는 것이다. 판단하지 말고, 걱정을 말하는 것이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걱정됐어.” 이 한 문장은 관계를 무너뜨리는 단정보다 훨씬 건강한 시작이 된다.
물론, 걱정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괜찮다. 관계란 원래 맞춰가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다. 다만,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상대를 내가 만든 이미지에 가두지 말자. 아는 척 대신, 묻는 사람이 되자. 상상 대신, 함께 풀어가는 쪽을 선택하자. 그 선택이 관계를 오래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