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영웅은 의무가 아니다.

by 오박사

사람들은 왜 영웅을 좋아할까. 아마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영웅들은 대개 남다른 능력을 가졌다. 힘이 세거나, 하늘을 날거나, 초능력을 쓴다. 하지만 능력이 있다고 모두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힘을 가졌어도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악당이 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갈릴까. 우리는 흔히 영웅과 악당을 도덕의 문제로 구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기준은 훨씬 단순하다. 나에게 이득이 되면 영웅이고, 불편하면 악당이다.


그들이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도와야 하고, 나서야 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기대를 충족하면 박수를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손쉽게 비난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더 강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도울 의무가 있을까. 돈이 많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위해 살아야 할 책임이 생기는 걸까.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자리를 맡았다고 해보자. 처음엔 모두 말한다. “그건 네가 아니면 안 돼.”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은 바뀐다. 그가 해주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건 왜 안 했어?” “네가 좋아서 한 거잖아. 더 열심히 해야지.”


이 지점에서 많은 ‘영웅’은 지친다. 칭찬보다 요구가 많아지고, 감사보다 당연함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영웅은 외로운 사람이 된다. 어쩌면 진짜 이기적인 존재는 악당이 아니라, 영웅과 악당을 마음대로 나누는 우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선택에 쉽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 선택이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지일 뿐이다. 영웅은 의무가 아니다. 누군가 나서주었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러니 누군가 우리를 위해 앞에 서주었다면 비난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은 이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만약 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면, 직접 영웅의 자리에 서보면 된다.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롭고 무거운지, 그제야 알게 될 테니까.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질 때 비로소 영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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