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증후군’, ‘착한 아이 콤플렉스’, ‘슈퍼맨 증후군’.
이름만 들으면 모두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해,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원하지 않는 희생을 감내한다.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나’가 없다는 것이다.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진짜 나는 뒤로 물러난다. 이들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두렵고, 그래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조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칭찬 하나에 크게 기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칭찬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늘 조심스럽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하고, 화가 나도 드러내지 못한다. 힘들어도 웃어야 하고, 누군가를 도와도 그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처음에는 감당할 만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삶은 점점 버거워진다.
그럼에도 이들은 상황이 힘들어질수록 자신을 탓한다. 아픈 것이 당연한데도, 아파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 자신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타인의 아픔에는 누구보다 민감하면서 자신의 아픔은 쉽게 넘긴다. 그렇게 흘려보냈다고 생각한 감정들은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을 뿐이다.
결국 찾아오는 것은 공허다.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고, 더 이상 스스로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다. 혹시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진짜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힘들면 힘들다 말해도 되고, 화가 나면 화내도 된다고. 나를 위해 살아도 된다고.
그동안 가면을 쓰고 버텨온 것, 충분히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제는 가짜 나를 내려놓아도 된다.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착한 아이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늘 구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는 나를 지우지 않는 삶을 선택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