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앓던 교사가 초등학생을 살해한 사건으로 사회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 정부와 교육청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분주하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대책의 방향을 보면, 결국 우울증을 앓는 교사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과거 조현병 환자의 강력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대책이 나왔다. 모든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위험 요소로 보고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 많은 환자들은 병 자체의 고통에 더해, 자신의 상태를 숨겨야 한다는 부담까지 떠안게 되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고, 주변의 시선은 더 날카로워졌다. 사회는 안전해지기보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더 벌려놓았다.
우울증을 둘러싼 이번 사태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우울감을 느낀다. 그것이 깊어지고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이 된다. 코로나 이후의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 과도한 경쟁은 우울증을 더욱 흔한 질환으로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모두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는 대책이 나온다면, 문제는 더 깊어질 뿐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결과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아니다. 왜 이런 질병이 늘어나고 있는지, 왜 사회가 점점 더 많은 사람을 한계로 몰아넣고 있는지 그 원인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사회와 제도, 국민 모두가 아파하는 사람들이 버틸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리가 아니라 관심이다. 통제가 아니라 이해다. 이것은 범죄를 정당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제의 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는 제안이다. 사건의 충격 속에서도,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처벌과 관리만으로는 사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