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로또번호를 남기고 간 지네

by 오박사

2025년 3월 초, 00파출소에서 야간근무를 서던 새벽 2시쯤이었다. 갑자기 발목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어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가운데 손가락보다도 큰 지네 한 마리가 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지네를 쳐냈고, 급히 에프킬라를 뿌렸다. 책상 밑으로 숨어든 녀석을 겨우 잡아냈다. 그런데 잠시 후, 지네는 쌍으로 다닌다는 말이 사실인지 또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녀석까지 처리하고 나서야 상황이 끝났다.


그날 이후 휴게시간에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또다시 지네가 나타날까 봐 날밤을 지새웠고, 한동안 야간근무만 서면 지네가 기어오르는 듯한 착각이 계속됐다. 급기야 꿈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계속 지네에 시달리다 트라우마라도 생기면 오히려 더 힘들겠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지네를 머릿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같은 해 4월 중순, 이번에는 다른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새벽 3시경이었다. 또다시 오른쪽 정강이에서 익숙한 통증이 느껴졌다. 느낌이 너무 비슷해 이번에도 지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은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또 지네에 물린 것 같다고 하자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혹시 몰라 소파 밑과 컴퓨터 아래에 에프킬라를 뿌렸다. 잠시 후, 진짜 손가락만 한 지네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로 또 한 번 물린 것이었다. 지구대와 파출소가 생긴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네에 물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데, 내가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당한 셈이었다.


이쯤 되면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한데, 오히려 나는 이 일을 행운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큰 운이 들어오려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심지어 속으로는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라는 오기까지 생겼다.


퇴근을 앞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물린 날짜를 로또 번호로 조합해 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실제로 적어놓고 보니 꽤 그럴듯했다. 직원들도 번호가 마음에 드는지, 자기들도 함께 로또를 사자고 했다.


이 일이 정말 행운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직원들과 한바탕 웃고, 나만이 겪은 이 특별한 경험을 ‘진짜 대운’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네에게 잠시 감사한다. 다만, 다시는 물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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