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이어 13년에도 여전히 가슴뛰는 일들을 찾아 움직였다. 그러던 중 또다른 재미를 발견했다. 경찰 내부 전산 시스템에는 ‘교육 포털’이라는 플랫폼이 있다. 오프라인 교육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 교육을 함께 실시하고자 만든 공간이다. 경찰청은 이 포털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사이버 강의를 꾸준히 업데이트해왔다.
2013년, 당시 SNS, 특히 페이스북 홍보 열기가 뜨거웠고, 각 경찰 관서의 담당자들은 효과적인 SNS 활용법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내부 게시판에 ‘SNS 홍보’ 관련 사이버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그 공고를 보는 순간, ‘이건 내 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SNS 홍보법에 대해 몇 차례 강의한 경험도 있었고, 페이스북에 꾸준히 관련 글을 올려온 터였다. 그동안 정리해둔 자료도 많았기 때문에, 강의 영상 촬영쯤이야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지원서를 작성해 응모했다.
지원자가 많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내 이력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나는 사이버 강사로 최종 선발되었다. 전국의 경찰관들이 내 얼굴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짜릿했다. 마치 유명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경찰청에서 보내온 자료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순히 영상만 촬영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A4 용지 40장 분량의 강의 원고를 먼저 작성해야 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원고라는 걸 제대로 써본 적도 없었고, 내가 가진 자료로는 10장도 채우기 어려울 것 같아 당황했다. 주어진 기한은 한 달.
며칠 동안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일,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부터 홍보 관련 책을 사 모으고, 국회 도서관과 경찰청 게시물 등 관련 자료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이론과 실무를 적절히 섞어가며, 원고를 한 장 한 장 써 내려갔다. SNS 홍보는 시각 자료가 많아 글이 많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마치 대학원 논문을 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원고가 점점 늘어날수록 자신감도 함께 자랐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한 내에 결국 40장 분량의 원고를 완성했다. 다 쓰고도 내가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고는 경찰청 홍보담당관실의 감수를 받아야 했다. 만약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폐기될 수도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일주일 후, 감수 승인 통보를 받았다. 이제 남은 건 시나리오 스토리보드 완성과 영상 촬영뿐이었다. 복장은 경찰 정복으로 정해졌고, 촬영은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촬영도 만만치는 않았다. 강의는 청중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시선을 나누고 몸짓을 할 수 있는데, 영상 촬영은 카메라 세 대 앞에서 혼자 말해야 하니 어색했다. 보통 처음 촬영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찍고도 보완 촬영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4시간 만에 모든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긴장되긴 했지만 카메라가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고, 점점 적응되면서 말실수도 줄었기 때문이다. 외주 업체 측에서도 순조롭게 끝난 걸 반겼다.
두 달 후, 내 강의 영상이 경찰 교육 포털에 업로드되었다. 게시물 아래 선명히 적힌 내 이름을 보는 순간,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듯한 기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기저기서 영상을 봤다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이 뿌듯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도전에 성공했고, ‘완주’의 참된 즐거움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