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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동료강사, 인생 후반기 이정표

by 오박사

인원이 많은 조직에는 사내 강사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경찰청도 이에 발맞춰 2012년, ‘동료강사 제도’를 도입했다. 수사, 교통, 경비, 홍보, 여성청소년 등 각 분야별 전문 강사를 양성하기 위해 전국 지방경찰청에 모집 인원이 배정되었다. 마침 강의에 대한 열망이 커져가던 나에게 이 제도는 단비와도 같았다.

그러나 경남지방경찰청에 배정된 홍보 분야 동료강사는 단 한 명뿐이었다. 혹시나 싶어 경남청 홍보실에 문의했더니, 나 외에는 지원자가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결과 발표를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알고 보니, 홍보팀장도 지원했고, 결국 그가 최종 선발된 것이다. 실망과 배신감이 뒤섞였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나는 다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1년을 보냈다. 혹시 또 누군가 홍보 강사에 관심을 갖고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있었다. 마침내 2013년 10월, 기다리던 동료강사 2기 모집 공고가 게시되었다. 이번에도 홍보 분야는 단 한 명.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없을 것 같아, 지원서에 그동안 쌓인 간절함을 모두 담았다. 그리고 마침내, 재수 끝에 동료강사 2기로 선발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원하는 강의를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은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2013년 초부터 2014년 중순까지 진행된 밀양 송전탑 설치 공사로 인해 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연일 반대 집회를 열었고,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 결과, 우리 경찰서는 비상근무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하필 그 시기에 동료강사 교육이 일주일간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예상대로 과장님은 교육 참석을 반대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상사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이 교육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이틀에 걸쳐 과장님을 설득했고,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업무를 병행하는 조건’으로 승낙을 받았다.

교육 날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지냈지만, 다행히 약속은 지켜졌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일주일간의 교육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모두가 고생하는 와중에 나 혼자 빠져나온 것 같아 미안함도 있었지만, 그만큼 간절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나 없이도 사무실은 잘 돌아갔다. 만약 그때 교육을 포기했다면, 나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장님을, 그리고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동료강사가 된 이후, 강의 기회는 훨씬 많아졌고 나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누군가는 강의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라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창원, 김해, 양산, 마산, 하동, 의령 등 여러 경찰서를 직접 찾아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2025년인 지금도, 나는 여전히 동료강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강의는 내게 기쁨이자 행복이며, 무엇보다 내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그 후로 나는 더 많은 기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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