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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감독관으로 다시 선 그 자리에서

by 오박사

가슴 뛰는 경험 중 하나로, 나는 순경 공채시험 감독관으로 참여했던 일을 빼놓을 수 없다. 순경 공채시험은 해마다 두 차례 치러지며, 그때마다 각 경찰서에서는 약 10명 안팎의 직원을 감독관으로 차출한다. 시험이 주말에 치러지고 보수도 많지 않아 대부분의 직원들은 감독관을 꺼렸다. 그래서 사전에 순번을 정해 놓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의사와 상관없이 참여해야 했다.


나는 순번이 아니었지만, 후배를 맞이하는 자리에 서보고 싶었다. 수험생으로 앉아 있었던 그 공간에 감독관으로 다시 서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성공해서 금의환향한 이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은 작은 욕심도 있었다. 그렇게 자진해서 지원했다. 담당자는 ‘이게 웬 떡이냐’는 듯 반가워했다.


하지만 시험 감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감독관을 기피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곧 깨달았다.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았고, 숙지해야 할 내용도 방대했다. 감독관은 두 차례에 걸쳐 교육을 받아야 했고, 한 교실에 두 명이 들어가 상위 계급이 정 감독관, 그 아래가 부 감독관 역할을 맡는다. 나는 부 감독관으로 지정되었다. 수험생 입실 시간, 화장실 이용 가능 시간, 시험 시작과 종료 절차, 감독 방식, 부정행위 유형, 소지품 검사 등 숙지할 사항이 한가득이었다. 실수할까 봐 하나하나 줄을 긋고 메모하며 익혔다. 시험 전날까지 교육 자료를 꼼꼼히 읽고 체크했다. 누가 보면 내가 시험을 치르는 줄 알았을 것이다.


시험은 오전 10시에 시작되지만, 감독관은 오전 7시까지 시험장에 도착해야 한다. 다시 한번 주의 사항을 교육받고, 시험장별로 준비된 물품을 수령하는 절차가 있었다. 학교 정문과 주차장은 이미 수험생과 가족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수험생들은 아직 입실 전이어서 밖에서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지나 시험장 안으로 향할 때, 나는 여러 시선을 느꼈다. 묘하게 짜릿했고,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첫 감독이라는 긴장감에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입실이 시작되고 교실로 들어서자, 수험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향했다. 긴장한 티를 감추려 진지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내게 또 다른 전율을 안겨주었다. 그 눈빛 속엔 부러움과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12년 전의 내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절실함을 알기에, 괜스레 뭉클했다.


시험 시작 30분 전부터 방송이 나왔다. 수험표와 필기도구를 제외한 모든 물품을 교실 밖으로 내놓으라는 안내였다. 10분 뒤면 그들의 인생을 좌우할 시험이 시작된다. 교실 안은 정적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리자 수험생들은 분주히 시험지를 펼치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창밖에 우산을 쓴 채 쪼그려 앉은 한 학부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자녀의 시험을 함께 준비하며 흘린 시간과 눈물을 알기 때문이다. 시험에 방해될까 발소리조차 조심해야 했고, 30분가량 꼼짝 않고 서 있자 허리가 뻐근해졌지만, 그들의 간절함 앞에 그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스피커에서 ‘30분 남았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오자, 수험생들의 손이 더욱 바빠졌다. 시험지를 답안지에 옮겨 적는 이, 모르는 문제를 뒤로하고 아는 것부터 푸는 이, 모두 마지막 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험 종료 10분 전, 아직 답안을 옮기지 않은 수험생을 보고 속으로 외쳤다. "빨리! 지금 옮겨 적어야 해!" 마치 내가 시험을 치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반면, 일찌감치 시험을 마치고 여유롭게 답안을 덮어 놓은 이들의 얼굴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마지막 1분까지 집중하는 수험생도 있었고, 나는 그의 노력이 끝까지 닿길 응원했다. 종이 울리자 우린 일제히 "손을 책상 위에 올려 주세요"라고 말했다. 종이 울린 후 손을 움직이면 부정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1시간 40분의 긴 여정이 끝나고, 교실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정 감독관은 앞에서 수험생을 지켜보았고, 나는 교실을 돌며 답안지를 수거했다. 이후 봉인을 하고 수험생 두 명과 함께 확인 절차를 마쳤다. 수험생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우리는 교실 정리를 마치고 본부실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첫 시험 감독 경험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시험을 치른 것도 아닌데, 내 등과 손바닥엔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1시간 40분을 진심으로 싸운 것이었다.


감독관으로 서서 후배가 될 이들을 맞이하던 순간, 나는 성공한 ‘덕후’처럼 턱에 힘을 주고 그들의 시선을 즐겼다. 하지만 그들의 간절함을 온몸으로 느낀 뒤엔, 그런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순경 공채시험 감독은 내게 즐거움과 설렘, 그리고 초심의 감정을 모두 떠올리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 두 차례 더 감독관으로 참여했지만, 그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되새기곤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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