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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전국 노래자랑 예심, 그날의 실수

by 오박사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경찰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면서, 나는 SNS를 통해 가슴 뛰는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 경찰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고, 그중엔 지금 생각해도 웃음 짓게 만드는 특별한 기억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국노래자랑 밀양 편 예심에 도전했던 일이다.


어느 날, 밀양 시청에서 전국노래자랑 참가자 모집 공문이 경찰서로 전달됐다. 늘 새로운 홍보거리를 고민하던 나는 그 공문을 보는 순간 속으로 외쳤다. ‘그래, 이거다!’


경찰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예선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였고, 게다가 포돌이와 포순이 복장을 한 전경들까지 동행하면 분명 눈에 띌 거라 생각했다. 내 목표는 단 하나, 방송 화면 속 응원단의 플래카드였다. 참가자 무대 뒤로 응원단이 비치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 홍보 문구를 넣으면 자연스러운 홍보가 가능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다음 날, 근무복을 입은 채 근처 동사무소를 찾았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경찰관인 나를 쳐다보자 괜히 부끄러워졌다. 더욱이 ‘전국노래자랑’ 참가 신청 때문이라 더 민망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신청서를 제출했다. 담당 공무원은 웃으며 접수증을 건넸고, 나는 신청곡으로 1번에 '달의 몰락', 2번에 '황진이'를 적었다. 접수증을 받은 후 얼른 자리를 빠져나왔다.


예심까지 2주가 남아 있었다. 나는 전경 두 명과 함께 무대를 준비했다. 포돌이와 포순이 복장을 한 채 간단한 안무를 짜서 연습을 거듭했다. 이 정도면 예선은 무난히 통과할 거라 생각했다.


드디어 예심 당일, 나는 경찰 정복을 입고 전경들은 캐릭터 복장을 한 채 밀양 시청 대강당으로 향했다. 1,000명가량의 인파로 북적이던 현장은 마치 축제 같았다. 여기저기서 노래 연습과 춤이 펼쳐졌고,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 것은 우리 팀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긴장한 마음을 애써 숨기고 무대를 기다렸다.


예선은 무반주로 진행됐고, 현장에서 바로 합격 여부가 결정됐다. 참가자의 80%는 트로트를 선택했다. 그걸 본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달의 몰락’을 부를까, 아니면 분위기에 맞춰 ‘황진이’로 바꿀까? 결국 나는 ‘황진이’를 선택했고, 전경들에게는 무대 위에서 대충 막춤이라도 춰달라고 당부했다.


대기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생각보다 합격자가 많지 않아 불안감이 밀려왔다. 손과 등에 땀이 흐르고 심장은 요동쳤다. 큰 숨을 내쉬고 순서를 기다렸다. 마침내 우리 차례. PD의 시작 사인이 떨어졌다. 나는 "어얼씨구 저얼씨구!"를 외치며 손짓을 크게 했다. 1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려온 PD의 외침. “죄송합니다.” 탈락이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무대를 내려와 조용히 전경들을 데리고 빠르게 강당을 벗어났다.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차에 올라타고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아쉬움에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역시 그냥 달의 몰락으로 갈 걸...’


10분쯤 자책에 빠져 있다가, 실수를 인정하고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고한 전경들에게 치킨을 사주고, 나는 그날 저녁 아쉬움을 술잔에 담아 넘겼다.


그날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음엔 혼자서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땐 꼼수 없이, 내 방식대로 무대를 즐기고 당당하게 내려올 것이다. 비록 떨어지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짜 나로 빛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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