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2016년까지 경찰서 홍보 업무를 맡으면서, 나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우리 서를 더 확실하게 알릴 수 있을까’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경찰이라는 딱딱한 틀을 깨고 SNS부터 오프라인까지 온갖 기발한 시도를 벌이던 중, 내 가슴에 불을 지피는 공문 한 장이 날아왔다. 바로 <전국노래자랑 밀양 편> 예심 참가자 모집 공문이었다.
공문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엔 이미 완벽한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 이거다!’ 정복을 입은 경찰관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 뒤로 포돌이와 포순이 탈을 쓴 전경들이 앙증맞게 춤을 춘다. 그리고 객석에선 동료들이 홍보 문구가 적힌 거대한 플래카드를 흔든다. 이 정도 그림이면 무조건 방송에 나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국 방송이라는 황금 같은 홍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다음 날, 나는 근무복을 입은 채 비장한 걸음으로 근처 동사무소를 찾았다. 제복 입은 경찰관이 등장하자 쏠리는 시선에 귀끝이 붉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 전국노래자랑 신청서를 밀어 넣었다. 웃음을 꾹 참는 담당 공무원 앞에서, 나는 1지망에 울랄라세션의 ‘달의 몰락’, 2지망에 박상철의 ‘황진이’를 적어 내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예심까지 남은 시간은 2주. 나는 전경 두 명을 차출해 포돌이, 포순이 복장을 입히고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리며 '달의 몰락' 안무를 맞췄다. 호흡은 완벽했고, 예선 통과는 떼어 놓은 당상 같았다.
드디어 예심 당일. 밀양 시청 대강당은 무려 1,000명가량의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왁자지껄한 소음, 여기저기서 목을 푸는 맹수(?)들을 보니 축제장이라기보단 차라리 콜로세움 같았다. 정복을 쫙 빼입은 나와 캐릭터 탈을 쓴 전경들은 단연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지자, 긴장감은 배가 되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기석에 앉아 예심을 지켜보던 내 동공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선은 잔인하게도 무반주로 진행됐고, 가차 없이 합격과 탈락이 현장에서 갈렸다. 무엇보다 참가자의 80% 이상이 간드러지는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 치명적인 계산이 돌았다. ‘다들 트로트를 부르는데, 혼자 달의 몰락을 부르면 분위기를 깨는 거 아닐까? 2지망에 썼던 황진이로 노선을 바꿔야 하나?’
불안감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손에는 땀이 쥐어지고 목이 타들어 갔다. 마침내 PD의 매서운 큐 사인이 떨어졌다. 나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전경들에게 “대충 막춤이라도 춰!”라고 속삭인 뒤, 연습했던 달의 몰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목청껏 외쳤다. “어얼씨구~~ 저얼씨구~~!”
결과는 처참했다. 내 떨리는 1절이 채 끝나기도 전, 혹은 포돌이가 스텝을 제대로 밟기도 전에 스피커를 찢는 PD의 건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죄송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가장 빠른, 그리고 가장 확실한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이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부끄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는 정복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갈 길을 잃은 포돌이와 포순이의 손을 낚아채듯 끌고 쏜살같이 강당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천 명의 관중이 우리만 비웃고 있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씨, 그냥 연습한 대로 달의 몰락 부를걸!’
차 안에서 10분쯤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하던 나는, 결국 나의 알량한 꼼수를 인정하기로 했다. 고생한 전경들에게는 바삭한 치킨을 물려주고, 나는 그날 저녁 쓰디쓴 소주잔에 뼈아픈 아쉬움을 털어 넣었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실소가 터지면서도 짙은 후회가 남는다. 나의 실패는 노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남들이 다 트로트를 부른다는 이유로, 분위기에 편승해 얄팍한 꼼수를 부리며 ‘내가 진짜 준비한 내 모습’을 버렸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설 기회가 온다면, 그땐 뒤에 숨을 전경들도, 얄팍한 눈치 보기도 다 버리고 혼자 오를 것이다. 내 페이스대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며 1절을 당당히 완창하고 내려오리라. 비록 또다시 '땡!'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남의 장단이 아닌 진짜 나의 장단으로 빛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