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음주 운전 차량의 번호판을 빨간색으로 바꾸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처음엔 ‘그거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음주 운전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것은 너무 감정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었다.
음주 운전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범죄자 표시'처럼 차량에 낙인을 찍는 방식은 과연 적절한가?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아무런 표식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유독 음주 운전에만 이런 공개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또한, 해당 차량을 가족이나 지인이 함께 운전할 수도 있다. 차량이 범죄의 상징처럼 낙인찍히게 되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가족들까지 부당한 시선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방식일까?
더 나아가, 빨간 번호판은 특정인을 사회적 표적으로 만들 수 있다. 누군가는 분노를 표출하려 차량에 계란을 던지거나, 흠집을 내는 등의 재물손괴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결국 또 다른 범죄를 부추기게 되는 셈이다.
이런 방식은 인권 침해의 소지도 크다. 차별을 조장하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안 하면 그만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리 단순했다면 법과 제도가 왜 존재하겠는가.
만약 이 논리가 받아들여진다면, 앞으로 음주 운전뿐만 아니라 절도, 폭행, 성범죄 등 다른 범죄에도 각기 다른 ‘표식’을 달자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점차 신뢰를 잃고, 서로를 감시하며 낙인을 찍는 불안한 공동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법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의 언어다. 우리 스스로 사회의 안전망을 지키기 위해 합의한 약속이지, 복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적으로 분노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어야 진정한 법치주의를 지킬 수 있다.
잠시 흔들렸던 나 자신도 반성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남에게 빨간 딱지를 붙이기보다 우리 스스로 마음에 경고등 하나씩 켜두자. 그리고 법을 어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그것이 진정한 책임 있는 시민의 자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