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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지는 것을 모르는 사회

by 오박사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한다. A가 먼저 내고, B는 늦게 내면서 이기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다. 당연히 B는 손쉽게 승리한다. 이번엔 규칙을 바꿨다. A는 여전히 먼저 내고, B는 늦게 내면서 ‘지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B가 오히려 어려워한다. 규칙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이기려 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우리는 누군가를 ‘이기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늘 비교를 부추기고, 상대를 이겨야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예를 들어,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을 때 “잘했어, 수고했어”라고 칭찬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많은 부모가 “너희 반에 100점이 몇 명이니?” “옆집 ○○는 몇 점 받았니?”라며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이렇게 늘 승리만을 추구하다 보니, ‘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무조건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기려는 집착이 불필요한 논쟁과 갈등을 만들고, 결국 관계를 깨뜨리기도 한다.


생각해 보자. 하나의 그림 속에 산과 바다가 함께 그려져 있다고 치자. A는 그 그림을 ‘바다’라고 하고, B는 ‘산’이라고 한다. 만약 서로 “이게 어떻게 산이냐”, “이게 어떻게 바다냐”며 다툰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는 이런 어리석은 다툼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그럴 때 누군가 한 발 물러서서 “네 말이 맞다”고 인정한다면, 상대방은 오히려 그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다. 굳이 이길 필요 없는 일까지 승부하려 애쓰기보다, 무의미한 다툼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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