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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나는 강사다' 관중평가단, 그날의 전율

by 오박사

2015년 10월, 제3회 동료강사 경진대회 일정이 내려왔다. 2014년 제2회 대회에서 아쉽게 탈락한 후 설욕을 다짐하며 1년을 기다린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문제는 경남청이 2년 연속으로 출전 기회를 줄 것인가였다. 다행히 이번에도 기회는 주어졌다. 단, 경남청 자체 예선을 통과해야만 전국 본선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이 지원했는데, 강력한 경쟁자로 예상했던 한 명이 기권하면서 두 명만의 대결이 되었다. 심사위원 투표 결과 18대 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예선을 통과했다. 주제는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SNS 홍보’였지만, 탈락 원인을 철저히 분석한 뒤 강의 자료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였다. 게다가 본선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예선에서는 아껴두었다.


본선 전날, 참가자들은 경찰 인재개발원에 모여 발표 순서를 추첨하고 리허설을 진행했다. 나는 운 좋게도 6번을 뽑았다. 너무 앞이나 뒤가 아니라서 마음에 드는 순번이었다. 리허설은 눈치 싸움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지 않고 중요한 부분만 빼고 대충 보여주며 서로를 견제했다. 나 역시 이동 동선만 점검하며 짧게 마무리했다.


컨디션을 위해 일찍 자려 했지만, 옆방에서 다른 출전자들의 연습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들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나도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생각으로 몸을 쉬게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다.


대회 당일, 전국에서 모인 동료강사들로 대회장은 일찍부터 북적였다. 이번 대회는 평가 방식이 달라졌다. 관중 100명에게 버튼을 나눠주고, 그들이 누른 점수(60%)와 전문 심사위원 점수(40%)를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강단 뒤에는 점수판이 설치돼 발표 직후 바로 집계 결과가 공개됐다.


첫 번째 발표자가 끝났을 때, 100명 중 48명만 버튼을 눌렀다. 모두 강사들이라 그런지 냉정했다. 그 장면을 보자 긴장감이 몰려왔고, 나는 미리 준비해간 우황청심환을 씹어 삼켰다. 그래도 쿵쾅거리는 심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앞선 발표자들의 점수는 46~54점.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강단에 서자 손발이 떨리고 얼굴 근육마저 경직됐다. 그러나 티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연습한 대로 발표를 이어갔다. 종료 2분을 남기고 꺼내든 히든카드는 바로 ‘랩’이었다. ‘작은 영웅’이라는 노래에 맞춰, SNS 홍보에 나서는 경찰 모두가 영웅이라는 메시지를 랩으로 전했고, 마지막은 “여러분 모두가 영웅입니다”라는 멘트로 마무리했다.


인사를 마치고 관중 평가단을 바라보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곧 버튼 소리와 함께 점수가 집계되기 시작했고, 관중석에서 “와아!” 하는 함성이 터졌다. 이어 다시 한번 “우와!”라는 환호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최고점이었던 54점을 넘어섰음을 직감했다. 뒤를 돌아보니 전광판에는 ‘74’라는 숫자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경남청에서 응원 온 동료강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고, 벅찬 감격이 나를 휘감았다. 이후 발표자들이 이어졌지만, 2등 점수는 64점에 그쳤다.


모든 발표가 끝난 뒤 전문 심사위원들의 점수까지 합산됐다. 잠시 후, 6위부터 역순으로 순위가 발표됐다. 3위까지 불리지 않은 내 이름에 모두가 1위를 확신했지만, 결과는 2위였다. 전문 심사위원 점수가 관중평가를 뒤집은 것이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전국 동료강사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성과였다.


그날 나는 전국 동료강사 경진대회 2위라는 결과를 얻었고, 무엇보다 도전의 참맛을 온몸으로 느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함성과 전율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 이후로 나는 도전을 두려워하기보다 즐기게 되었고, 또다시 짜릿한 전율을 찾아 새로운 문을 두드리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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