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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그렇게 나는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by 오박사

‘밀양강 오딧세이’에 시민배우로 참여해 3만여 명의 관중으로부터 박수세례를 받은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함성, 박수,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업무에 집중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아쉬움을 덮을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속한 사회인 극단 ‘극단밀양’에서 매년 11월 정기공연을 하는데, 올해는 특별히 뮤지컬 무대를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마이크를 차고 노래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9월, 첫 공연팀 미팅이 열렸다. 연출은 밀양 출신으로 슈퍼디바 우승자였던 장은주 씨가 맡았고, 대구에서 활동하는 뮤지컬 배우 두 명이 합류했다. 우리 극단에서는 4명이 출연하고, 평소 함께하던 고등학생 2명도 참여했다. 여기에 밀양 출신의 유명 비보이 장빈 씨와 그의 팀원들까지 더해져 무대는 한층 풍성해졌다.


첫 미팅은 장빈 씨 연습실에서 진행됐다. 대구 배우들은 일정상 함께하지 못해 10월부터 합류하기로 했다. 연출님은 시나리오를 건네며 전체 흐름을 설명하고 각자 배역을 맡겼다. 연기를 처음 하는 나에게도 중요한 역할과 대사가 주어졌는데, 몇 줄 되지 않는 대사였지만 그 자체가 벅찼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밤까지 연습이 이어졌다. 두 번째 미팅에서는 배우들이 둘러앉아 대본 리딩을 했는데, TV에서 보던 장면을 직접 체험하니 진짜 배우가 된 듯했다. 감정 표현은 쉽지 않았지만 연출님의 설명 덕분에 점차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연습부터는 극의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고, 어색한 부분을 고쳐가며 완성도를 높여갔다. 비보이들의 무대는 압도적이었다. 그들의 퍼포먼스에 시선을 뗄 수 없었고, 음악이 흐르면 모두가 어깨를 들썩이며 하나 되는 순간을 즐겼다. 50대부터 10대까지 모두가 하나되는 모습을 어디가서 볼 수 있을까.


10월부터는 대구 뮤지컬 배우들이 합류했다. 그들의 노래는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객석에서 듣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울림이었다. 연기 역시 감탄을 자아냈고, 그들과 같은 무대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번 작품은 평범한 마을 친구 넷이 독립군이 되어 전쟁을 치르다 모두 죽음을 맞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네 명 중 한 명이 나였고, 매 장면마다 묘한 자부심과 짜릿함이 뒤섞였다.


공연은 밀양 아리랑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500석이 넘는 객석을 채울 생각에 긴장이 몰려왔다. 당일 아침, 전문 미용사들에게 분장을 받고 핀 마이크를 얼굴에 부착하자 진짜 배우가 된 듯한 실감이 났다. 그러자 더 긴장되었고 혹시나 대사를 잊지 않으려 계속 되뇌며 무대에 올랐다.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입장하자 심장은 폭발할 듯 뛰었다. 시작 음악이 울리자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무대에 몰입했다. 1시간 40분 동안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를 누비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다행히 대사 실수 없이 감정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인사하자 객석을 가득 메운 박수 소리가 또다시 나를 전율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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