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후배들의 가슴속에 묻어둔 조용한 혁명의 씨앗

by 오종민

2012년, 뜨거운 열정 하나로 신임 순경들을 모아 독서 토론회를 꾸렸다. 하지만 뚜렷한 방향성이 없었던 모임은 1년 만에 연기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씁쓸한 실패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6년, 우리 서에 9명의 신임 순경이 발령받아 왔다. 풋풋한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가슴 한구석에서 다시 묵직한 불씨가 타올랐다. 신임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자율적인 참여를 권했다. 다음 날, 9명 중 5명이 기꺼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1년의 실패를 복기하며 뼈아픈 오답 노트를 썼다. 첫 모임이 깨진 결정적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그들의 모임'이 아니라 철저히 '나의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앉아있는 한 애착이 생길 리 만무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완벽하게 판을 뒤집기로 했다.


나는 파격적인 룰을 도입했다. 매번 모임마다 주최자를 바꾸고, 당번이 된 사람이 다음 모임의 기획과 진행을 통째로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혹여나 후배들이 부담을 느낄까 걱정도 됐지만, '아니면 말고'라는 배수진을 쳤다.


장소부터 바꿨다. 숨 막히는 경찰서 회의실을 벗어나 탁 트인 외부 카페와 식당으로 향했다. 딱딱한 제복의 무게를 벗어던지자 분위기는 금세 말랑말랑해졌다. 첫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이름 정하기였다. 각자 낸 아이디어 중 만장일치로 탄생한 이름은 바로 '폴러스(Polus)'. 경찰(Police)과 함께(Plus)를 합친, 우리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철저히 입은 닫고 지갑만 열었다. 솔직히 '이 친구들이 알아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꼰대스러운 기우도 있었지만, 후배들은 보란 듯이 내 예상을 기분 좋게 박살 냈다. 사람은 무대가 주어지면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라는 것을 그들이 증명해 보였다.


두 번째 주최를 맡은 후배의 기획력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는 깔끔하게 정리된 발제문을 나눠주더니, 우리를 밀양의 천황산으로 이끌었다. 영남알프스의 웅장한 산세를 가르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벌인 열띤 토론. 딱딱한 책상 앞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생생한 아이디어와 웃음이 쏟아졌다. "아, 토론이 이토록 짜릿할 수 있구나!" 온몸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주자는 각자의 인생을 담은 발표 과제를 내놓았고, 능수능란한 사회로 좌중을 압도했다. 한 사람의 당찬 도전이 다음 사람의 승부욕을 자극하며 모임은 거침없이 팽창했다. 소문을 듣고 선배 직원 두 명이 합류했고, 외부 강사를 초청해 지식의 깊이를 더하기도 했다. 우리는 매주 함께 성장하는 묵직한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하지만 조직의 현실은 낭만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인사발령 시즌이 닥치며 세 명의 신임이 수사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별난 모임을 고까워하는 일부 선배들의 불편한 시선과 무언의 압력이 후배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나둘 눈치를 보며 불참석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자유의지 존중'. 그것이 내가 세운 폴러스의 제1원칙이었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나는 씁쓸함을 삼키며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렇게 두 번째 모임 역시 1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또 실패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을 것이다. 혼자 앞서 걷는 대신 후배들과 나란히 걸어본 그 1년은 충분히 눈부셨다. 비록 그들이 지금은 나와 같은 갈증을 느끼지 못해 잠시 멈춰 섰지만, 나는 확신한다. 밀양 천황산 꼭대기에서, 어느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우리가 함께 뿌렸던 '성장의 씨앗'은 그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단단히 심어졌다.


언젠가 그 씨앗이 싹을 틔우는 날, 그들 역시 나와 같은 마음으로 다시 후배들을 위한 새로운 무대를 기꺼이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그 아름다운 릴레이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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