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말하는 자'에서 '다가가는 자'로

by 오종민

마이크 앞이 편안해진 강의 4년 차. 청중의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내 어깨에도 남모를 힘이 잔뜩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내 안의 끓어오르는 열정과 가슴 뛰는 도전의 기록들을 더 넓은 세상에 쏟아내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 무렵, 서울의 자기 계발 모임에서 인연을 맺은 강원대학교 객원교수 형님으로부터 가슴 뛰는 제안이 날아들었다. "내 수업 시간에 특강 한번 해주지 않을래?" 대학 교단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행여나 형님의 마음이 바뀔세라 "무조건, 무조건 하겠습니다!"라며 앞뒤 재지 않고 덥석 기회를 낚아챘다.


특강은 나를 포함해 세 명의 강사가 각각 1시간씩 릴레이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무대에 설 동료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 그리고 두 살 어린 동생이었다. 묘한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잘해야지. 내 인생의 스펙터클한 반전을 제대로 보여주겠어!'


주제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나의 인생 이야기'로 잡았다. 시키는 대로만 살던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가슴 뛰는 일을 좇으며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 낸 나의 짜릿한 서사. 슬라이드를 넘기며 연습을 할 때마다 당장이라도 학생들에게 달려가 내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드디어 결전의 날. 기차를 타고 서울로, 다시 지하철로 두 시간을 달리는 고단한 여정이었지만 피곤함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강원대학교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대학 캠퍼스 특유의 웅장한 생동감이 나를 휘감았다. 교수실에서 일행들과 짧은 차 한 잔을 나누고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때, 나를 향해 쏟아지던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그 순간 멎어 있던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어 강단에 섰다. 호기심 어린 수십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그 젊고 뜨거운 기운을 흡수한 나는 마치 작두를 탄 무당처럼 신들린 듯 이야기를 풀어냈다. 내가 던진 유머가 정확히 타점을 때리고 청중의 웃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흥분은 배가되었다. '나의 도전, 나의 열정, 나의 성공.' 1시간 동안 나는 그 무대의 완벽한 주인공이었다.


내 뒤를 이은 동생의 강연 역시 나와 결이 비슷하게 뜨거웠다. 하지만 마지막 순서였던 친구가 무대에 오르자, 공기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이야기는 폭발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잔잔하고 묵직했다. 나와 동생이 '이런 멋진 나를 봐달라'며 화려한 조명 아래서 스스로를 드러내기 바빴다면, 친구는 철저히 자신을 지운 채 조명의 방향을 '학생들'에게로 돌려놓고 있었다. 강사가 아닌, 청중의 삶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그의 강의를 보며, 나는 순간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강의가 성공적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피드백 시간, 많은 학생이 내 열정적인 강의에 큰 울림을 받았다고 환호해 주었다. 며칠 뒤 페이스북 메시지로 장문의 감사 인사를 보내온 학생도 있었다. 강사로서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내 마음 한편에는 지울 수 없는 부끄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진정한 강사란 단상 위에서 자신을 뽐내는 자가 아니라, 단상 아래의 청중을 빛나게 해주는 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 강원대학교에서의 특강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강사 오종민의 인생에도 가장 거대한 전환점을 선물해 주었다. 화려하게 말하는 법을 넘어,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다가가는 법을 배우게 된 나의 진짜 첫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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