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저는 00백화점의 신용카드 발급을 권유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당시 부산에만 있던 00백화점이 김해, 울산, 창원 등지로 영역을 확장하며 공격적인 홍보에 나섰을 때였습니다. 카드 대행사 직원 한 명 승합차에 대학생 네 명을 싣고 타 지역의 거대한 오피스 빌딩 앞에 우리를 툭 내려놓았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층마다 있는 낯선 사무실 문을 무작정 열고 들어가, 백화점을 홍보하고 카드 신청서를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쉬웠지만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 울려 퍼지는 정적 가득한 사무실에 불쑥 들어가 낯선 이들에게 말을 붙이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대부분의 반응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투명 인간 취급하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 귀찮다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 심지어 영업 방해라며 불같이 화를 내며 쫓아내는 사람도 부지기수였습니다. 100명의 문을 두드려도 단 한 명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 날이 수두룩했습니다. 돈을 벌겠다고 덤벼든 일이었지만, 매일같이 입구에서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다 보니 자존심은 바닥을 쳤고 서러움에 남몰래 눈물을 삼킨 적도 있었습니다. 함께 시작했던 동료들이 하나둘 백기를 들고 떠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라며 수백 번 흔들렸습니다. 그러다 대략 300명쯤 거절의 쓴맛을 보았을 무렵이었습니다. 조심스레 말을 건넨 한 직장인이 제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신청서 한 장을 쓱 내밀었습니다. 지독한 거절의 터널을 지나 받아낸, 제 인생의 첫 카드 발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아주 놀랍고도 엉뚱한 스파크가 튀었습니다. ‘300명한테 거절당했는데, 결국 1명이 해줬네?’ 보통 사람이라면 "300명이나 찔러봐야 고작 1명 해주는 미친 짓"이라며 절망했겠지만, 제게 그 1명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어라? 300명에 1명이면, 600명을 만나면 2명, 3,000명을 만나면 무조건 10명은 받을 수 있다는 소리잖아!" 절망의 지표가 순식간에 기분 좋은 '확률 게임'으로 뒤집히는 순간이었습니다. 발품을 판 만큼, 거절당한 횟수만큼 결국 내 성과로 돌아온다는 명확한 공식이 세워지자 막막했던 두려움이 말끔히 걷혔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여전히 "300명에 한 명꼴이면 이건 답이 없는 노가다야"라며 한숨을 쉬고 포기를 입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굳게 닫힌 사무실 문들이 더 이상 두려운 거절의 벽이 아니라, 내 확률을 채워줄 기회의 문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가짐이 바뀌자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위축되어 기어 들어가던 제 목소리에 힘이 붙었고, 억지로 지어내던 미소가 자연스럽고 환한 미소로 변했습니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라며 씩씩하게 돌아서서 다음 문을 열었습니다. 제 표정과 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유와 확신은 사람들의 싸늘한 방어벽을 허물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감 있고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에게 신뢰를 보냅니다. 제 태도가 달라지자 100명에 1명이던 성공률이 2명이 되고, 5명이 되며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하루 평균 50장 남짓의 신청서를 받을 때, 저는 매일 90장이 넘는 신청서를 쓸어 담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달변가여서가 아닙니다. 오직 '마음가짐' 하나가 바꾼 기적이었습니다.
수당을 정산받던 날,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무려 10만 원을 더 받았습니다. 대학생에게 10만 원은 엄청난 거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제가 손에 쥔 것은 빳빳한 지폐보다 훨씬 더 값진, 제 인생을 관통할 위대한 진리였습니다.
"두드리면 결국 열린다." 아무리 견고한 철문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300번, 3,000번 두드리면 기어코 틈이 벌어진다는 것을 저는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3,000명을 만나면 10장을 할 수 있다'는 스무 살의 무식하고도 우직한 배짱은, 50세가 된 지금도 제 삶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기둥입니다.
마음은 태도를 바꾸고, 태도는 기어코 결과를 뒤집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지레 겁을 먹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씩씩하게 웃으며, 오늘도 기회의 문을 향해 거침없이 노크를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