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와 떨어진 자존감으로 답답함이 계속 되는 가운데 또 다른 악재가 겹쳤다. 아들 녀석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나도 3일간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차라리 출근을 하면 몸이라도 움직이고 뭐라도 할 거리가 있어 잠시나마 불편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평일 집에서 아들과 함께 3일을 있으려니 갑갑함이 배가 되었다. 처음엔 재밌는 프로그램이라도 보면 나을까 싶어 예능 프로를 봤지만 답답함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일단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몸이라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내 주변의 답답함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에 책상정리와 옷 정리를 했다. 버릴 것들을 버려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기로 했다. 다음 몸을 더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더러운 차를 보니 손세차를 하면 되겠다 싶었다. 몸을 힘들게 하면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이 덜 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동안 꼼꼼히 차를 세차하니 나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세차를 다 하고나서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햇볕을 쬐며 걷기로 했다. 우울한 기분엔 걷는 게 좋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도 걸으니 조금은 답답함이 풀리는 듯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나를 잠식했다. 밤이 다가오니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밤이 무서웠다. 낮엔 사람들이 있는 곳을 갈 수 있고 걸어 다니며 생각을 덜 할 수 있지만 밤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하기 때문에 두려웠다. 잠도 이루지 못하니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되었다. 역시 밤은 찾아왔고 답답함은 가슴을 옭아맸다. 너무 힘들었다.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나에게 그런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늘 자신감에 차 있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나와 우울이란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고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이겨낼 것이라는 자신감까지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재미없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싫어지고 불안감만이 나를 지배하니 도저히 그 상황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나를 더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잠들지 못했고 내 눈가엔 처음 보는 다크서클이 선명했고 내 얼굴은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아 죽으로 겨우 배고픔만 면해가며 하루를 버텼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계속 하려했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 몸과 마음을 맡겼더라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첫 번째 노력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하고 내 환경을 바꾸려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노력은 다음 장에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