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무언가를 물을 때, 검색해 보라는 말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검색이란 개념이 없을 때는 답변해 주는 아빠나 엄마도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생각한 후 아이에게 말해주고, 아이도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생각해 지식을 쌓아왔다.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생각의 시간을 가졌었다. 요즘은 검색이란 간단한 말로 아이를 인터넷의 세계로 보내버린다. 검색 한 번만 하면 뚝딱 나오는 세상이니 더 이상 생각이란 걸 할 필요가 없어졌다. 스마트폰이 우리 뇌의 기억 능력을 퇴보시킨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린 이제 그것 없이 살 수 없다. 내 뇌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스마트폰에 푹 빠져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라더니 편리를 얻고 뇌를 조금씩 내어주는 꼴이다. 진화학자들은 인간이 다시 한번 진화를 겪을 것이라 말한다. 지금도 '호모 스마트 포니 쿠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목이 점점 굽어지고 척추가 휘어 직립보행의 형태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의 흐름에 올라탔다곤 하지만 그로 인해 불안과 분노가 인간성을 잠식해 가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발도로프라는 사립학교가 있다. 그 학교에선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일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애플, 구글 등 거대 IT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자녀들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등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겐 정작 그런 것들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전자기기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면서도 우린 선뜻 이런 문물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마치 암에 걸릴 것을 알면서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없듯이 말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자니 아예 도태될 거 같고 또, 내 몸과 정신건강을 내어주자니 걱정되기도 하고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고민된다.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이 하도 요지경으로 돌아가니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이런 걱정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용을 조금 줄이고 의존도를 줄여 어느 순간 고독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우린 과연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이 왔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