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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Oct 17. 2023

33. 경찰 공채시험 감독  

1년에 두 번 신임순경을 뽑는다. 신임순경은 필기시험, 적성검사, 체력검정, 면접 점수를 종합하여 선발한다. 필기시험은 자신이 응시한 지역(서울, 부산, 경남 등)의 학교 몇 군데에서 실시된다. 경남청 응시자는 창원 소재의 학교에서 시험 친다. 필기시험 감독관은 현직 경찰관들이다. 각 경찰서에 인원이 할당되는데, 지원자가 없으면 강제로 순번을 돌려 차출한다. 내가 경장이었을 때, 순경 공채시험 감독관 차출 공문이 내려왔다. 경장은 순경 바로 윗 계급이다. 시험치 던 때가 떠오르며 그 현장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졌다. 담당자에게 감독관 지원 의사를 밝혔는데, '이런 걸 지원하는 놈도 있네'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반가움을 표했다. 지원자가 없어 강제 차출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라도 먼저 지원해 주니 고마웠을 것이다.       


보통 한 시험장에 두 명의 감독관이 들어간다. 정 감독관과 부 감독관으로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 나는 부 감독관을 맡았다. 시험 전 감독관들은 감독 요령 등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는다. 특히, 주의할 점이 많아 자세히 듣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시험장 입실 마감 시간,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부정행위 적발, 시험지 나누어주는 시간 등에 대해 주의할 점을 교육받았다. 가끔 수험생들의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아 이래서 아무도 지원하려고 하지 않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놓치는 게 있을세라 매뉴얼 하나하나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들었다. 중요한 부분은 별표 표시해 놓고 교육이 끝난 후에도 몇 번을 더 들여다봤다.    

   

시험 당일에도 감독관들은 7시 40분에 모여 다시 한번 교육을 받는다. 차를 몰고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니 이른 시간인데도 수험생들과 부모님으로 보이는 이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정장을 입은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몇몇 수험생들이 나를 쳐다봤다. 그들의 눈빛엔 부러움이 가득했다. 살짝 어깨에 뽕이 들어갔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태연한 척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감독관 대기실로 들어가니 각자 들어갈 교실별로 준비물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내 자리를 찾아 앉아 앞에 놓여있는 부 감독관 목걸이를 착용했다. 감독관들도 긴장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긴장을 없애려는 듯 교육계에서 준비해 놓은 음료, 커피, 사탕 등을 먹으며 삼삼오오 잡담을 나누었다. 앞서 받았던 교육을 30분가량 다시 한번 받은 후 각자 지정된 시험장으로 향했다. '드르륵'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앉아있던 수험생들의 눈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그 눈빛들이 부담스러웠지만, 담담한 척 교탁 앞에 자리했다. 그들에게 시험장 입실 마감시간과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에 대해 고지했다.       


당시에는 시험 20분 전 교실 입장이 차단되며, 그 이후로는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장실은 시험 중에도 한 번 다녀올 수 있게 바뀌었다. 아직 오지 않은 수험생이 다섯 명 정도 되었다. 그들은 시험이 시작될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입실이 차단되었고, 방송에 따라 답안지를 나누어 준 후 자신의 이름과 수험 번호등을 적게 했다. 시험 시작 5분 전 다시 방송에 따라 시험지를 나누어줬다. 시험지는 시험 시작 전 볼 수 없다. 만약, 시험지를 먼저 본다면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더 이상 시험을 칠 수 없다. 10시 시험을 알리는 음악이 흘렀다. 고요함 속에 종이 넘기는 소리와 '사각사각' 문제 푸는 소리만 들렸다. 감독관들은 혹시나 발소리가 수험생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우리 또한 시험에 든 것 같았다. 


시험 시간은 1시간 40분, 몇 년간의 노력이 그 짧은 시간 안에 결정된다. 인생을 건 이들의 사투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어떤 수험생은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어갔고, 또 다른 이는 계속 고개를 갸웃 거리며 시험지만 만지작 거리기도 했다. 괜히 내가 마음이 더 안타까웠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금방 흘러 1시간 10분이 지났다. "30분 남았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때부터 시계를 보는 수험생들이 많아졌다. 시험지를 넘기는 손도 더 빨라진 것 같았다. 그들의 조급함이 확 와닿았다. 10분 정도 남았을 때, 아직 답안지에 답을 옮겨 적지 못한 수험생들이 보였다. '빨리 답을 옮겨 적으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 공간에서 그들과 나는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초조함은 나에게 전염되었고, 내 손에 땀이 났다. 드디어 시험을 끝내는 음악이 흘렀고, 그들 모두에게 책상 아래로 손을 내리라고 말했다. 손을 내리지 않으면 부정행위로 간주한다고 경고했다. 맨 뒷줄부터 답지를 수거했고, 봉투에 담아 봉인했다. 수험생들을 먼저 내보낸 후 교실을 정리했다. 감독관 둘만 남은 교실엔 아직도 열기가 가득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했고, 머리가 아팠다. 그 후로도 감독관 경험을 두 번 더 했다. 흥미로 시작한 경험이었지만, 오히려 그들의 간절함을 느끼고 나 또한 간절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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