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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Oct 16. 2023

32. 경찰 교육의 산실을 가다

경찰도 1년에 10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는다. 사격, 인권, 양성평등, 개인정보, 수사나 교통사고조사와 같은 실무교육 등 알아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간단한 지식과 실무교육은 대부분 사이버 교육으로 실시되고, 그 외 각 부서에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직무교육은 해당 경찰청 교육센터에서 하루 또는 이틀간 교육받는다. 사격과 같은 더 전문적이고 시간이 필요한 교육은 충남 아산에 있는 경찰 인재개발원에서 1~2주간 교육받게 된다. 경찰 인재개발원 교수진은 현장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워낙 교육 수요가 많아 그들만으로는 모든 교육을 다 담당할 수 없어 외래강사를 초빙하기도 한다. 외래강사는 경찰과 전혀 상관이 없는 외부인이기도 하고, 동료강사를 초빙하기도 한다. 동료강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인재개발원 교단에 서길 꿈꾸고 나도 그랬다. 그곳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니까.   

    

2015년도에 나는 SNS홍보에 대해 강의하고 있었다. 강의안은 SNS가입 방법부터 친구 늘리기, 사용 방법, 홍보하는 방법, 홍보 효과, 주의 사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SNS를 활용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SNS활용 강사도 경찰 내부에서 5명 이내 정도뿐이었다. 그해 7월, 인재개발원장이 바뀌었는데 그분은 SNS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2015년도 10월경 SNS홍보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외래강사를 초빙했다. 어느 날 043으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스팸인 것 같아 '받지 말까' 고민하다가 이상한 끌림에 의해 받기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인재개발원이라는 말이 들렸다. '인재개발원에서 왜?' 놀라움보단 의아함이 더 컸다. 강의 의뢰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듣다 보니 강의의뢰라는 것을 알았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경찰 교육의 산실에서 내가 강의를 한다고?' 꿈이 아닐까 싶었다.         


경찰 계급은 순경부터 시작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나뭇잎 모양 두 개가 순경이다. 그 뒤로 경장, 경사, 경위 순으로 올라간다. 경사부터는 기본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요즘은 사이버교육으로 대체되었지만, 그 당시엔 인재개발원에서 1주일 교육받았다. 경사, 경위 기본 교육 과목에 SNS홍보가 포함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그 사실을 강의 한 달 뒤쯤 알게 되었다. 당시엔 영문도 모른 채 강의자료를 준비해야 했지만, 그곳에서 강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동료들에게 인재개발원에서 강의할 거라 말하니 하나같이 다들 "오우! 대단한데, 이제 교수님 소리 듣겠네"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강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교수님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아산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 보니 차를 이용하면 3시간 40분 걸리고 기차를 이용하면 2시간 20분 걸렸다. 기차가 빠르긴 하지만 천안아산역에서 인재개발원까지 택시로 20분을 더 가야 했다. 택시비도 왕복 36,000원을 내야 하는 부담이 있어 고민했다. 20분 정도 생각 끝에 강의료로 교통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편한 길을 택하기로 했다. 왕복 7시간을 운전할 자신이 없어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2003년에 경찰이 되어서 2015년까지 인재개발원에서 교육을 세 번 정도 받았다. 12년 동안 세 번이니 교육받으러도 가기 쉬운 곳이 아닌 것이다. 그런 곳을 교수가 되어 방문하게 되었다. 택시를 타고 정문을 들어서는데 의경이 막아섰다. 신분증을 보여주며 "강의하러 왔습니다"라고 하니 통과시켜 줬다. 기사님의 뒤통수가 "강사님이시군" 하는 듯해서 어깨에 괜스레 힘을 줬다. 택시에서 내려 지정된 강의동으로 향했다. 강의동은 A, B, C 세 곳이 있는데 내가 강의할 곳은 A동이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교육생들이 근무복을 입은 채 앉아있었다. 쉬는 시간이라 엎드려 자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폰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빈자리도 많았다. 두 세명 정도와 눈을 마주쳐 가볍게 목례로 인사했다. 어색한 공기를 느끼며 강의 자료를 준비했다. 


첫 만남은 늘 어색하다. 시작 5분 안에 그 분위기를 휘어잡아야 한다. 교육생들은 그 시간 안에 이 수업을 집중해서 들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나의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수업종이 울렸다. 강사는 자신을 소개할 때부터 관심을 집중시킨다. 예를 들어 이름이 '전강사'라면 "전 태어나면서부터 천상 강사였습니다. 인사드립니다. 전강사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거나 '청와대 강의' 등 특이경력을 넣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당시 근무하던 부서를 이용했다. '경무계'는 직원들이 기피하는 부서여서 탈출하기가 힘들고, 파출소보다 시간 외 수당이 1년에 1,000만 원 정도 적었다. 경무계에 근무한 지 5년째 되던 해여서 집행유예 5년(경무계 탈출 못한 지 5년), 벌금 5,000만 원(시간 외 수당 5년 치)이라고 소개했다. 그 후 혈액형 유형 이야기로 어색했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러자 두 세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강사도 강의장 분위기에 따라 그날 강의가 달라진다. '오늘은 됐다'싶었고, 예상대로 강의는 매끄럽게 흘러갔다.  


SNS홍보 강의는 휴대폰을 이용한 실습도 한다. "다들 휴대폰을 꺼내세요"라고 말하니 수업 중에 폰을 본다는 것을 신기해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페이스북 가입 후 내 계정을 먼저 팔로우하는 세 사람에게 커피 쿠폰을 보내줬다. 선물이 있다는 말에 강의장이 시끄러워지며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첫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인재개발원은 10월부터 12월까지 2달간 출강했다. 하지만, 그해를 마지막으로 그 강의는 폐지됐다. 2016년부터 경사, 경위 기본 교육이 사이버 교육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SNS활용의 부작용이 증가하면서 홍보 강의 수요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SNS홍보와 인재개발원 강의는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남은 경찰 생활동안 인재개발원에 교수 요원으로 근무해보고 싶다. 그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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