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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매몰 비용이 없다

아버지와의 기억 때문에 지른 한국시리즈 40만 원 티켓행.

by 이용현

저에겐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이 없습니다. 언젠가부터 각자 살기 바빠지기 시작했고 사춘기를 지나서는 각자의 생활에 전념하다 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많은 시간을 보낸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국 시리즈 진출 야구를 보는데 어렸을 때의 유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대전에 있는 야구장에 몇 번 다녀왔고, 주말이면 캐치볼을 하며 휴일을 함께 보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야구의 한 장면이 유년 시절 아버지와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공터에서 글러브를 끼고 서로에게 공을 던지며 아무 목적 없는 시간을 보냈던 날들. 공을 놓치고 실수를 해도 낄낄대며 더 힘껏 팔을 휘둘렀던 날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습니다. 친구도 친구지만,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 아버지와의 시간이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고작 그 한 줌 될만한 몇 날의 기억이 행복했으므로 여전히 아.버.지. 를 생각하면 그와 보냈던 가장 좋았던 날로 기억됩니다.


아버지는 젊었고 나는 어렸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금.

문득 그와 함께 했던 야구장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다시 한번 그와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서. 무료한 일상에 점점 야위어 가는 아버지에게 이번엔 반대로 좋은 추억을 안겨드리고 싶어서 한국시리즈 야구를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티켓을 구하기는 어려웠고 비 경로를 거쳐 1장에 20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티켓을 구매해 버렸습니다.

한국 시리즈 야구가 1장에 20만원이나 해야 되는 티켓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이 아니면 못 간다는 생각. 점점 늙어가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을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마음이 떠올랐을 때 이 감정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에 비싼 돈을 주고 예매해 버렸습니다.


어쩌면 행복에는 매몰 비용이 없다는 것. 유년 시절 그토록 좋았던 기억이 온 몸에 남아서 어른이 된 지금도 행복의 잔상을 떠올리듯, 행복은 언제나 시간이 바래져도 그 자리에서 빛난다는 것. 그 행복을 또 사기 위해서 이제는 비싼 돈을 치르며 30년 만에 야구장에 단 둘이 간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어딘가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가능한 행복한 시간들을 많이 보내야 하는 이유를 오늘, 티켓을 지르며 깨달았습니다.

행복에는 매몰 비용이 없다. 내 행복을 위해, 단 한 번 뿐인 경험을 위해 소중한 사람과 쓰는 비용에는 매몰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자주 많이, 행복한 시간을 쌓아 올려야 한다. 행복한 기억은 더 아름답게 포장될지언정 사라지거나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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