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나는 무엇을 쥐어야 하나

서른부근의 어느 멋진 날

by 이용현

가을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고

수목원에 핀 꽃들은 생기를 잃은 채 저마다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화사하게 핀 날들로부터 이주 정도 지난듯 했다.


어머니가 이야기 했다.

꽃이 죄다 시들었구나.

조금 더 일찍 올 걸.

미래에 내 모습 같아.

양쪽 볼에 깊게 패인 팔자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말을 붙였다.

그래도 내년에는 다시 피잖아?


그렇지.

하지만 내년에 피는 꽃은

지금 이 꽃들이 아니지. 전혀 다른 꽃들인 게야.

어제 그 꽃이 아니다.


어머니의 말이 가시처럼 날카롭게 박혔다.


지금 이 순간도 지나면 우리는 이곳에 오지 못할 것이다.

온다하더라도 지금 바라본 하늘과 날씨 풍경은 오늘같지 않을 것이다.


현재는 지나가고 과거가 되어 가고 있다.

활짝 만개한 꽃들도 결국 가시만 남기고 시들어가듯

청춘. 모든 젊음도 끝내 상실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상실은 늘 두렵다.

그럼에도 현재를 맘 껏 누리고 살아가게 하는 원인도 상실이 있기 때문이다.


절절하게 사랑하고 추하게 이별하는 것들.

숨쉬다가 숨이 멎는 것들.

낯선곳에서 1박을 하고 깨어나는 것들.


나와 함께 한 그 모든 벗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아름답게 추억하고 또한 영원할 수 없어서 그리움을 갖는다.


감사함을 가져본다.

살아가는 일이 힘들지라도 살아보지 않은 날을 살아내는 것에 대하여 찬사와 감탄을 자아내며.


수목원을 빠져나가는 길

키작은 한 아이의 주먹에

다 시들어버린 꽃이 쥐어져 있었다.

시든 꽃은 뭐하러 주웠어.

아버치가 묻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집에 가서 자기가 키워보겠대.


비록 시들었을지라도 아이가 줘고 있던 것은

어쩌면 희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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